고도원(高道源·64)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2001년 8월부터 시작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360만 명이 넘는 독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배달하고 있다. “좋은 글귀 하나가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는 그는 인생의 고독을 마주한 이들을 위한 글귀를 모아 <절대고독>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홀로 있는 시간이야말로 고갈된 마음의 우물을 채우고 창조의 샘물을 퍼 올릴 수 있는 값진 시간이라는 그의 깨달음을 나누고자 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절대고독’이라는 화두는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지내며 대통령의 고독을 바라보고, 자신의 고독과 마주했던 고도원 이사장이다.
“청와대에 있으면서 대통령의 고독한 시간을 견문하게 됐어요.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고, 책임져줄 수 없는 외로운 시간.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비단 한 국가의 지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 저는 그것을 꿈이라고 표현하는데, 꿈을 가진 사람 그리고 많은 이들 앞에 서야 하는 사람에게는 고독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걸 우리 일상에 비춰보면 자식 앞에 서 있는 부모,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등 누구에게나 절대고독은 찾아오거든요. 그걸 어떻게 견뎌내고 일어설 것인가에 대해 명상을 하며 깊이 고민했죠. 그때의 생각을 나누고,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잠깐 멈춤, 쉬어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단지 ‘고독’이 아닌 ‘절대고독’이라는 제목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절대긍정, 절대사랑처럼 강조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데는 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개인이 겪는 고독은 당사자에겐 절대적 상황이죠. 때론 그 순간이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기도 하고, 삶의 분기점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다른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고독, 그런 점에서 누구나 절대고독의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고 이사장에게 절대고독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작은 개울에서부터 깊고 넓은 강까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고독의 강을 건넜노라고 털어놨다.
“시골 목사의 아들로서 겪어야 했던 궁핍한 생활이 저에게 고독을 안겨줬어요. 다른 사람들은 밥을 먹는데 나만 덩그러니 떨어져 굶어야 했고.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반복되니까 상실감이 컸어요. 대학 때는 긴급조치 9호로 제적당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고, 청년기에는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 절망감 등으로 범벅돼 있었죠. 기자생활을 할 때, 대통령 연설문을 쓸 때도 고독했어요. 글은 누가 대신 써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등바등 스스로 해결해야 했죠. 그런 절대고독의 강을 건너면서 두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내면이 더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고 이사장은 예방주사를 맞듯 고독에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야 불시에 강물이 밀려오더라도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물의 깊이를 알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슬기롭게 고독의 순간을 넘기는 힘이 생긴다고.
“수많은 절대고독의 강을 경험하면 직관과 통찰력이 생깁니다. 강물의 깊이를 어림잡을 수 있게 되죠. 그러면 그 깊이에 맞춰 대비할 수 있어요. 때론 일부러라도 스스로 고독한 시간을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걸 ‘잠깐 멈춤’이라고 표현해요. 잠깐 멈춰서 내 안의 고요함, 평화 등을 찾는 거죠. 그렇게 고독의 면역력을 키워야 느닷없이 황량한 고독을 만났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에너지로 삼을 수 있어요.”
‘멈춤’이라고 하면 일상을 내려놓는 행위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멈춤은 더 나아가기 위한 ‘쉼표’와 같은 것이다.
“자동차로 치면 기름 떨어지기 전에 주유소 가는 거예요. 일을 아주 놓는 게 아니란 말이죠. 더 일하고, 더 달리기 위해서 잠시 쉬어가는 겁니다. 쉬는 것도 대단한 용기예요. 다들 마치 멈추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놓아버리면 다 잃어버릴 것만 같고.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 가다가 깜빡 졸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브레이크를 밟는 용기를 내서 잠깐 멈춰 쉬어가야 오히려 안전하고 슬기롭게 고비를 넘어 나아갈 수 있어요.”
내 얼굴 풍경이 주변 풍경을 만든다
잠시 멈춰 쉬어가는 방법으로 그는 ‘명상’을 적극 추천한다. 그는 그가 머무르고 있는 ‘깊은산속 옹달샘(아침편지문화재단)’을 찾아와 명상하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라. 그리고 그 미소를 삼켜라”라고 제안한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동안 살아온 대로 다 얼굴에 나타나거든요. 나이 들수록 자기 표정을 인위적으로라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미소 짓는 훈련을 하고 그것을 내 안의 미소로 바꾸는 것, 외면의 미소를 목구멍으로 탁 넘기고 그것을 꿀꺽 삼켜서 가슴과 배를 채워 얼굴의 표정과 내면의 표정이 일치하도록 해야 해요. 그래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죠. 미소를 짓고 나무를 보세요. 나무 이파리들도 미소 짓습니다. 웃는 표정으로 구름을 보세요. 구름이 웃는 입꼬리 같기도 하고, 웃는 눈썹처럼 보이기도 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남에게 미소로 다가가면 그 사람도 나에게 미소로 다가와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황량하다면 그럴수록 좋은 표정을 지어야 내 삶의 조건들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
고 이사장도 젊은 시절엔 표정이 어두워 무섭고 날카롭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미소를 머금으려 노력하다 보니 요즘은 “표정이 참 좋다”라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 기분 좋은 표정과 더불어 그가 항상 다스리고 신경 쓰는 것은 ‘아우라’다.
“흔히들 포스, 카리스마 이런 이야기하잖아요. 그 사람이 주는 느낌이 있어요. 주파수라고도 하죠.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도 어떤 이는 기분이 좋은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괜히 불쾌할 때가 있어요. 이런 아우라도 표정과 같은 차원인데, 결국 자기가 만들어내는 겁니다. 고독의 강을 건너면서 얼마만큼 내면의 근육을 다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의미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주파수가 다르게 생성되죠. 객관식처럼 딱 나오는 답은 아니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기운 같은 거예요. 저 사람에게 신뢰가 가,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이런 느낌을 주는 게 좋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얼굴뿐만 아니라 자기가 내뿜는 기운, 그런 아우라도 책임질 줄 알아야 해요.”
스스로 터닝하지 않으면 거꾸로 터닝당한다
그는 내면과 외면을 가꾸기 위한 노력은 인생 후반전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터닝포인트의 원래 의미는 전환점이지만, 중년 이후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젊은 시절 터닝포인트는 인생을 180도 전환할 수도 있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그런 변화는 위험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단 1도씩 변화하더라도 그것을 멈추면 안 돼요. 휴대폰을 출시하면 생명력이 6개월 정도밖에 안 간다고 하잖아요. 그럼 이 휴대폰을 만든 사람은 6개월 후에 조금이라도 덧붙일 무언가를 미리 연구해두지 않으면 시장에서 밀리게 되겠죠. 앞서 이야기한 1도, 그걸 바로 덧붙이는 무언가로 보면 됩니다. 지식도, 인격도 계속 새로워지지 않으면 밀리게 돼 있어요.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혀 지내면 언젠가는 추락하고 슬럼프에 빠지겠죠. 작더라도 그런 터닝포인트를 가지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강제로 터닝당하고 말아요.”
변화는 더디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 속에서 그는 ‘만년 청춘’을 만끽하고 있었다. 육체적 한계는 있지만, 파릇파릇한 꿈을 꾸고 있기에 정신적 한계는 없다고 말한다.
“육체적으로 힘이 소진되니 빨리 지치잖아요. 근데 뇌는 젊었을 때보다 더 팔팔해요. 20~30대 때 못 보던 것들이 이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계속 새로운 꿈이 생겨나서 밤새 꿈을 꾸다 보면 몸은 피곤한데 가슴은 마구 뛰죠. 최근 김형석 교수가 강연에서 100세를 살아보니 65~75세가 인생의 전성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내가 지금 전성기, 최고의 청춘을 시작하고 있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