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대기업 간 ‘빅딜’의 포문을 SK그룹과 LG그룹이 열었다. SK그룹이 반도체용 웨이퍼 전문 기업인 LG실트론을 LG그룹으로부터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빅딜을 놓고 양 사 모두에 ‘윈-윈’이 되는 인수·합병(M&A)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불안한 대외 경제 상황으로 침체된 M&A 시장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SK-LG,‘윈-윈’ 전략… 선택과 집중 나선다 = 지난달 23일 SK는 LG와 LG실트론을 6200억 원에 인수하는 ‘반도체 빅딜’을 성사시켰다. 이로써 SK는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부문의 수직계열화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또한 SK는 LG실트론 인수를 통해 특수가스와 웨이퍼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 핵심 소재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는 지난 2015년에 반도체용 산업가스 제조기업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SK머티리얼즈는 지난해 산업용가스 제조사인 SK에어가스를 인수하고 합작법인인 SK트리켐과 SK쇼와덴코를 설립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LG그룹은 반도체 제작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게 됐다. LG그룹은 1989년 금성일렉트론을 설립,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5년 이름을 LG반도체로 바꾸고 사업을 키워왔지만,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분을 현대전자사업에 넘긴 바 있다. SK에 넘긴 LG실트론은 1990년 동부그룹에서 넘겨받아 경영권을 유지해왔으나, LG그룹 계열사와 별다른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그간 지분 매각을 위한 내부 논의가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번 매각 이후 LG는 신성장사업으로 삼는 에너지, 자동차 전장 사업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기업 간 ‘빅딜’ 계속 이어지나 = 반도체를 성장 주축으로 육성하려는 SK와 비주력 사업 청산을 통한 ‘선택과 집중’에 나선 LG그룹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이번 빅딜로 대기업 M&A 시장에 훈풍이 불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장 현금 6000억 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한 LG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는 구체적인 자금 활용 계획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LG그룹이 M&A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매각대금을 활용해 신성장 및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LG와 LG그룹이 추진하는 전장부품 사업, 인공지능 및 사물인터넷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다른 기업의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적극적인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는 SK도 M&A 시장에서 지켜봐야 할 주요 플레이어다. 다만 삼성, 현대차 등 최근까지 M&A 시장에 큰 활약을 펼쳤던 다른 주요 기업의 경우 M&A 시장에서 다소 주춤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최순실 게이트’와 트럼프 리스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M&A의 경우 그룹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한 만큼, 올 상반기에 추가적인 기업 간 대형 M&A가 일어나기는 다소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