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오뇌(汚腦·Brainstaining)-“내 머릿속을 더럽히지 말라!”

입력 2017-02-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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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단어 ‘세뇌(洗腦)’는 마오쩌둥이 처음 썼다. ‘반동적 제국주의 사고방식’을 사회주의 중국에 적합한 ‘정의롭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6·25전쟁 발발 석 달 뒤인 1950년 9월 미국의 한 기자-CIA 요원이라는 의심도 받은-가 ‘북한군이 포로로 잡은 미군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비인간적으로 집중 반복 주입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 ‘Brainwashing’이라는 영어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세뇌’를 직역한 이 단어는 냉전이 시작되자 금세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로 범용어가 됐다.

세뇌와 교육은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크다. ‘세뇌를 당했다’고는 쓰지만 ‘교육을 당했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교육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가르치나, 세뇌는 특정한 생각이나 사상을 반복적으로 주입해 특정한 세력, 특정한 집단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세뇌를 하려는 특정 세력, 특정 집단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으로 자신의 몸을 살찌게 하려는 사람들이다. 교육을 하는 사람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몸집을 키우도록 돕는다.

교육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지만, 세뇌는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생각에만 머물도록, 그 생각에만 갇혀 있도록 뇌를 오염한다. 그래서 세뇌는 ‘오뇌(汚腦·Brainstaining)’라고 써야 한다.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의 주장이다.) 세뇌는 뇌를 깨끗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럽히기 때문이다.

촛불과 태극기, 태극기와 촛불, 두 극단의 집회가 열리는 그곳, ‘광장’에 한 번도 나가 보지 않은 사람들, 한두 번 나갔다가 발길을 끊은 사람들은 ‘오뇌’되는 것을 싫어해서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촛불이든 태극기든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용납하지 못하는 곳, 자신들의 생각만을 머리에 담으라고 새되게 쉰 목소리-가짜 뉴스 혹은 선동 같은 것-로 강요하는 곳, 상대방을 ‘오뇌’하려다 실패하자 자기들끼리라도 더 ‘오뇌’하려고 핏대를 세우는 곳, 세상에는 A와 B만 있는 게 아니라 이 둘보다 더 참된 것일 수 있는 C도 있는데, C는 무시하고 오직 “A, B 중 하나만 택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그 ‘광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말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시몬 볼리바르<사진>는 남미 여러 나라를 북미의 미국과 같은 강력한 단일국가로 통일하려다 실패한 혁명가였다. 좌절한 그는 1830년 11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핏빛 서린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한 달 뒤 결핵으로 죽었다.

<나는 12년간 통치하면서 몇 가지 확신이 생겼다. ① 남미는 우리가 다스리기 벅찬 곳이다. ② 인생을 혁명에 바친 사람은 바다에 쟁기질한 것이나 다름없다. ③ 남미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다른 곳으로의) 이주이다. ④ 이 나라는 필연적으로 고삐 풀린 대중의 손에 들어갔다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쭙잖은 폭군들 차지가 될 것이다. ⑤ 우리가 온갖 범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흉포함에 철저히 압도당하면 유럽인들은 우리를 정복할 가치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⑥ 만약 어떤 국가가 원초적인 혼돈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남미가 그런 나라일 것이다.>

볼리바르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혁명, 개혁, 통일이 실패한 것은 남미에는 미국처럼 민주적인 법규와 제도가 없었고, 있었어도 민중은 그것을 무시했으며, 대농장주 등 기득권층이 철저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좌절과 회한만이 가득한 이 편지는 몇 단어만 바꾸면 지금 우리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뇌’되기 싫어 촛불도 태극기도 외면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이야말로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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