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기업들에 자국 내 공장 건립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의도대로 미국에 공장이 세워져도 외국기업에만 좋은 일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산업자동화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유럽과 일본의 로봇 등 첨단설비업체들이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부활계획에 반사이익을 볼 전망이라고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일본 도요타와 독일 폴크스바겐이 주요 고객인 영국 자동차 부품업체 빅커스엔지니어링은 미시간 주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멕시코와 캐나다 등으로 수출한다. 이 업체 직원 수는 지난 10년간 5배 늘었고 평균임금도 배 이상 뛰었다.
빅커스의 ‘메이드 인 US’ 성공을 돕는 것은 바로 일본과 독일의 첨단공장설비다. 빅커스는 지난 2006년 처음으로 일본으로부터 산업용 로봇을 도입하고 나서 미국제 설비는 전혀 구입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일본과 유럽연합, 스위스 등에 대해 산업용 로봇 등 첨단 ‘유연 제조업(flexible manufacturing)’ 설비 분야에서 41억 달러(약 4조2063억 원)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03년보다 적자가 배 이상 커진 것이다. 이 부문 무역적자는 2001년의 70억 달러에 비해서는 낮아졌으나 이는 외국 설비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영향으로 미국기업 경쟁력이 회복한 것은 아니다.
미국 첨단설비업체들은 자국에서도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다. 1995년만 해도 미국 수요의 81%를 현지 기업이 차지했으나 2015년에는 그 비율이 63%로 낮아졌다고 WSJ는 지적했다.
이런 무역 격차는 미국에서 더 많이 생산하고 수입을 줄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아이러니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면 외국산 설비 구매를 더욱 촉진할 것이기 때문. 고부가가치 분야인 이 부문을 외국기업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이 살아나봤자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스턴 소재 반도체 테스트 설비업체 테러다인의 마크 재질라 최고경영자(CEO)는 “수년 전 인간과 같이 일할 수 있는 로봇인 ‘코봇(Cobot·협업 로봇)’ 분야에서 쓸만한 업체를 찾으려고 했을 때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많은 기업이 있었지만 미국은 놀랍게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산업자동화의 발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불운한 일이지만 이런 발전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테러다인은 지난 2015년 세계 최대 코봇 제조업체인 덴마크의 유니버셜로봇을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