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국 시장은 국내 기업들에는 눈부신 성장을 약속한 ‘기회의 땅’이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시장이 한국 기업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 때문이다. 기업들은 위기 상황이라며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 제언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 같은 경제 보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통한 포괄적 접근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사태가 정치외교 문제에서 비롯한 만큼 우리 정부의 의지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계가 있다”면서 “현재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정치적으로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입지는 상당히 좁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를 통한 불공정 무역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 대부분은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중국 정부가 대놓고 ‘수입하지 마’라고 얘기한 적은 없다”며 “교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법적으로 수입을 막으면 WTO에 제소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제소당하지 않을 수준에서 교묘한 방법을 통해 제재를 가해왔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의 경제 제재 조치가 그동안 빈번하게 이뤄져 왔던 만큼 이를 이용한 문제 제기에는 나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중국은 WTO의 기본 원칙인 ‘최혜국 대우’와 ‘내국민 대우’ 협정을 위반했다”면서 “공식 제소는 안 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국제사회에 중국의 불법적 사드 보복 행위를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을 활용해 외교적 대응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국제기구를 통한 문제 제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영향력도 그리 크지 않다”면서 “중국이 미국 대상으로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는 만큼 오히려 미국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 현실성이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강 교수는 또한 “사드는 남북 문제가 아닌 미국의 국제 전략 관련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을 설득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11월 열릴 예정인 중국 공산당 회의 계기로 2기 시진핑 체제 출범에 맞춰 중국과의 관계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경우 국민대 교수는 “시진핑에게도 ‘사드 문제’는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한국의 입장에서도 사드를 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 만큼, 이 문제에 대해 완전하게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암묵적으로 사드 현상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을 시장 다변화로 극복했던 일본처럼 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