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1789~1857)는 본관이 안동이다. 1789년(정조 13) 아버지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과 어머니 청송 심씨의 장녀로 태어나 1800년(정조 24)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삼간택(三揀擇)을 하기 전에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왕비 책봉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1802년(순조 2) 왕비에 책봉되었다.
순원왕후는 조선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헌종 조와 철종 조) 수렴청정을 하였다.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서 지위와 영화를 누렸으나 여성으로서의 삶은 매우 불행하였다. 자녀 1남 3녀 모두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었다. 1830년(순조 30)에는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 뒤에 익종으로 추존)를 잃었고, 1832년(순조 32)에는 둘째 딸 복온공주(福溫公主)와 맏딸 명온공주(明溫公主)가 불과 한 달 사이에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년 후인 1834년에는 남편 순조가 승하하였으며, 1844년(헌종 10)에는 하나 남은 가족인 막내딸 덕온공주(德溫公主)마저 세상을 떠났다. 1849년(헌종 15)에는 유일한 손자 헌종도 후사 없이 승하하였다. 연이은 가족의 죽음으로 순원왕후는 노년에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을 것이다.
한편 순원왕후는 책을 읽거나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여 많은 한글 편지를 남겼다. 한글 편지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과 친정 안동 김씨 외척과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집안에 혼인, 회갑, 과거 급제 등의 경사가 있거나 유배, 죽음, 병고 등의 흉사가 있을 때 편지로 축하하거나 위로하였다.
또한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왕실 의례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문제 등에 대해 친형제 유근(?根), 원근(元根), 좌근(左根)이나 재종형제 홍근(弘根), 응근(應根), 흥근(興根)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 형제는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며 권력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순원왕후는 헌종 조 수렴청정을 할 때에는 친오라버니 유근, 재종오라버니 홍근 등에게 의지하였고, 철종 조 수렴청정할 때에는 친동생 좌근, 재종동생 흥근 등에게 많이 의지하였다.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친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순원왕후는 1857년(철종 8) 8월 4일 창덕궁에서 69세로 승하하여 순조 왕릉인 인릉(仁陵)에 합장되었다. 인릉은 본래 경기도 파주의 장릉(長陵, 인조와 인렬왕후의 능) 옆에 있었는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1856년(철종 7) 10월 11일 현재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헌릉(獻陵,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의 오른편 언덕으로 옮겨졌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