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vs 암호화폐'...정부-업계, 이유 있는 ‘이름 싸움’

입력 2017-12-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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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가상통화', '암호화폐(암호화 화폐)'

비트코인을 가리키는 말을 놓고 업계와 정부의 팽팽한 기싸움이 진행 중이다. 업계는 과거 가상통화(Virtual currency)라는 말이 쓰였지만, 최근에 세계적으로 암호화화폐(Crypto currency)라는 용어로 대체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정부는 '가상'이란 용어가 ‘실체가 없는 점’을 강조하며, '가상통화(Virtual currency)'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했다.

일각에선 용어 불일치가 업계·정부 등의 온도차는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4일 국회 정무위 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 문서에는 ‘가상통화’ 명칭을 사용했다.
▲4일 국회 정무위 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 문서에는 ‘가상통화’ 명칭을 사용했다.

▲반면 한국블록체인협회는 15일 거래소 자율규제안 기자간담회에서 플래카드에 ‘암호화폐’라고 명시했다.
▲반면 한국블록체인협회는 15일 거래소 자율규제안 기자간담회에서 플래카드에 ‘암호화폐’라고 명시했다.

◇가상화폐서 암호화폐로 = 국내 비트코인 첫 거래소인 코빗은 홈페이지에 '국내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란 문구를 홈페이지 전면에 내세운다. 코빗이 설립된 2013년에는 업계에서도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외 쓰이던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를 번역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2013년도 CNBC, ABC뉴스, 파이낸셜타임즈 등 미국 주요매체의 표기도 가상통화(가상화폐)였다. 이후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주축으로 해외에서부터 가상이란 단어가 게임머니나 도박칩 등 부정적 인식에 가깝다는 지적에 따라 점차 암호화화폐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올해 5월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본격적으로 용어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었다. 최근 빗썸, 코인원, 코빗, 코인플러그(CPDAX)가 주요 회원사인 한국블록체인협회는 공식적으로 ‘암호화폐’로 표기하기로 선언했다.

◇정부 공식 정의 '가상통화' = 정부는 과거부터 이어져오던 '가상통화(Virtual curreny)'가 적합한 표현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9월 1일 정부는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TF'를 개최했다.

이날 정부는 "용어의 출처는 불분명하나, 디지털통화(digital currency)와 암호화통화(crypto currency) 등의 용어가 혼용되다가 최근 가상통화(virtual currency)로 통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주요 국제기구 등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이 아닌 민간에서 발행한 '가치의 전자적 표시(digital representation of value)'라고 정의했다. 이에 대해 '암호화폐'를 주장하는 이들은 정부가 세계적 흐름을 무시하고, '가상'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놓치고 싶지 않아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가상통화라는 용어에 대해 양보의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부내부에서도 관련 용어의 정리를 놓고 적지 않은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이라며 "정부가 '가상통화'라는 용어를 공식 문서에 기재한 이상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반인 인식 전환 유도 = 업계에선 가상이란 용어가 블록체인 기술과 묶여 산업 전반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암호화폐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공동대표는 지난 12월 19일 "가상통화라는 단어는 암호화화폐 뿐만이 아니라 전산상 존재하는 쿠폰, 마일리지, 맴버쉽 포인트, 게임머니 등 유사화폐를 총칭하는 단어"라며 "이는 고도의 보안기술로 존재하는 암호화화폐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업계의 적극적인 용어 전환 시도에 서서히 시장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

예컨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선 '가상화폐'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로 자주 등장했지만,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명칭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선 양 측의 팽팽한 기싸움으로 의견 조율이 쉽지 않는다고 보고, 전혀 새로운 단어인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 등을 제안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통화나 지급수단으로의 기능에 이견이 있지만, 자산을 보관하는 수단으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흐름에 편승하고, 다른 나라와 의미 혼동을 없게 하기 위해선 암호화폐(암호화화폐)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정부와의 시각차가 크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 용어도 고려해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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