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국내 증시가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에 힘입어 뜨거운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공매도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대차거래 잔고금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주목된다. 상승랠리 이후 증시 하락 가능성을 대비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시장의 대차거래 잔고는 16일 기준으로 68조3656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대차거래 잔고가 61조1036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들어 11거래일 만에 무려 11.88%(7조2620억 원)가 늘어난 것이다.
대차거래는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기관투자자 등이 다른 투자자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다. 공매도 투자자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대차거래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실제로 하락하면 싼값에 사들여 갚기 때문에 통상 대차거래 잔고는 공매도의 선행 지표로 여겨진다. 대차거래로 차입한 주식 중 상환하지 않고 남은 주식의 금액을 뜻하는 대차잔고가 늘어났다는 것은 주가 상승 가능성을 낮게 보는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1년 전만 해도 50조 원 안팎에 머물던 증시 대차거래 잔고는 지난해 국내 코스피지수의 사상최고가 경신 행진 속에 사상 처음으로 70조 원대를 넘겼다. 이후 증시가 조정을 겪었던 연말에는 이 수치가 60조 원대 초반까지 줄었다. 하지만 연초 코스피지수가 2500선을 되찾고 코스닥지수도 16년 만에 900선을 밟는 등, 상승세를 타자 다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종목별 대차거래 잔고를 보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8조5152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카카오(2조3030억 원), SK하이닉스(1조9325억 원), LG디스플레이(1조1914억 원), 삼성바이오로직스(1조1144억 원) 순이었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이 5조3462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셀트리온헬스케어(1조6930억 원), 신라젠(8639억 원), 로엔(3517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늘어난 대차거래 잔고가 증시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해석에 신중할 필요는 있겠지만 대차거래 잔고는 ‘공매도를 위한 사전 준비물량’이라는 점에서 수급에 관련된 잠재적 부담 요인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개별종목 가운데 과하게 올랐다고 평가되는 종목은 투자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