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서울산수’는 옛 그림과 함께 만나는 서울의 아름다움을 담은 책이다. 저자의 단아한 한국화 그림은 서울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연결시켜 준다. △서울의 사계절 △한강 톺아보기 △도성도로 본 서울 등 세 부분으로 이뤄진 책은 글 반 그림 반이라 읽는 둥 보는 둥을 할 수 있다.
겨울이 지나면 봄꽃이 화려하게 뽐내는 날들이 온다. 그 봄날이 오면 봄의 풍류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 가운데 으뜸은 어디일까? 저자는 인왕산 남쪽 자락의 필운대를 꼽는다. 이제는 다소 퇴락해 버린 장소지만 옛사람들은 필운대를 배경으로 여러 그림을 남겼다. 정선의 ‘필운대상춘’, 임득명의 ‘등고상화’ 등이 그런 그림이다. 책을 읽고 봄날 옛사람을 생각하면서 그곳을 방문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필운대 같은 명소를 방문하였을 때 우연히 만나는 옛사람들의 흔적이다. 필운대 바위에 남겨진 글씨는 이항복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예전 서울 도성에는 유난히도 개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다. 그 모습은 1820년대 후반 순조 시절에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봄철의 ‘동궐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날 마포에도 도화동이 있고, 남산 기슭에도 도동이 있다. 이처럼 지명에 남겨진 옛사람들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에게 특별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파노라마처럼 서울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때로는 한국화로 소개한 점이다. 여기에다 친절하게 어디가 어디인지 지명을 소개하고 있다.
북한산도 저자의 소개로 더 잘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은 1740년대 가을, 도봉계곡을 찾아 ‘도봉서원도’와 ‘도봉추색도’를 그렸다. 두 작품 모두 단풍에 몰든 가을의 화려함을 회색조의 먹만으로 풀어낸 명작들이다.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으로 이루어진 삼각산을 저자를 통해 비로소 또렷이 알게 된다. 만장봉, 자운봉, 선인봉으로 이루어진 도봉산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문무자 이옥은 북한산을 찾아 “아름답기에 찾아왔다. 아름답지 않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절경을 극찬했다. 북한산의 아름다움은 하얀 화강암 바위들과 오색 낙엽이 어우러진 가을에 절정을 이룬다. 도봉산 오봉능선, 원효봉, 백운대, 노적봉, 의상봉으로 이루어진 북한산 서쪽 풍경 사진이 가슴을 환하게 만들어 준다.
옛사람들은 한강을 서호, 동호로 나누어 불렀다. 늘 오고 가는 올림픽도로의 연변에 궁산, 소악루, 염화진, 이수정, 안양천 등의 익숙한 이름들이 이어진다. 이들을 한국화로 보면서 저자의 설명을 더하는 일은 서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옛 서울은 지금은 선교사 묘지로 알려진 양화진이 번화한 곳이었다. 이에 더해 공암진, 행주진, 염창진 등에 큰 배들의 이동이 빈번했다.
‘서울산수’는 저자가 2년 동안 발품을 팔고, 옛 서적들을 뒤적이고, 저자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고 한국화를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책 한 권으로 저자의 2년 노작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세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깥세상을 찾는 일도 좋지만 내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의 사연을 아는 것도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쉬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