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이 총재의 4년은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시장과의 소통 부문이긴 했지만, 이 총재 스스로도 이를 감안해 자신의 점수를 매겨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었다. 그는 지난해 말 기자들과의 송년 만찬간담회 자리에서 “중앙은행을 둘러싼 정책 여건이 워낙 날로 불확실하다 보니 중앙은행도 앞으로 발생할 일을 사전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저에 대한 소통능력 평가도 이 같은 점을 감안해 점수를 매겨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실제 이달 중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이 총재에 대한 평가를 설문조사한 결과 5점(매우 잘했다) 만점에 보통 수준인 3.36점에 그친 바 있다. 국회 기재위는 한은을 국정감사하고, 총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기관이다.
시장에서도 전임자였던 김중수 전 총재에 대한 평이 워낙 나빴던 탓에 그의 취임을 ‘중수’가 가고 ‘상수’가 왔다고 평하기도 했었다. 다만 이 총재에 대한 수식어는 오래지 않아 ‘학생’으로 폄하됐다.
이 같은 평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의 실기(失機)가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다. 우선 그가 취임 일성(一聲)으로 강조했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 중앙은행을 둘러싼 정책 여건이 워낙 날로 불확실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짙은 안갯속에서도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또 친절하려고만 했지, 권위를 갖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가 통화정책방향 문구에 ‘위축’과 ‘개선’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듯 매달 바뀐 것이다. 이 총재는 그야말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 말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중앙은행의 방향성에 시장은 등을 돌렸다.
“향후 방향은 인상”이라는 취임 초기 정책스탠스가 불과 반년 만에 급격히 인하로 돌아선 것도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권 실세였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직후였고, 이후 그의 “척하면 척” 언급에 보조를 맞춰 금리인하가 또 이뤄졌었다. 145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를 촉발한 사건이기도 하다.
“나도 이 정부(박근혜정부) 사람”이라는 설화(舌禍)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계기가 됐다. 조선 및 해운업 사태로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라는 정부 요구를 거부하고 자본확충펀드 조성 와중에 나온 언급이라지만, 이는 발언 후 1년 반이 지난 지난해 국감에서도 여야 의원들의 지적이 나온 사안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한은에 입행해 부총재까지 지냈던 ‘정통 한은맨’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언급에 대한 놀라움은 배가됐다.
반면 임기 후반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과 캐나다 및 스위스와의 통화스와프 체결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중국과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에 따른 보복 와중에 이룬 성과다. 캐나다와 스위스는 6대 기축통화국으로 위기 시 안전판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과거 독도 문제로 통화스와프가 끊겼던 일본이 끝내 재협상을 거부한 후 이룬 성과라는 점은 덤이다.
임기 막판엔 행운도 찾아왔다. 글로벌 경기 호조와 IT 경기 호황에 임기 막판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기 동안 다섯 번의 금리인하로 인하만 해보고 가는 유일한 총재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중간에 정권이 교체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정권에 휘둘렸던 한은에 독립성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임기 내 마무리 지을 것은 확실히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당장 연준이 긴축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가계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와 한은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을 변수가 되고 있다. 그가 남겨 두고 떠나는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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