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살처분 참여자 상당 수가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해 '가축 살처분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처럼 드러났다고 4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연구소는 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수의사 27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12월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PTSD를 겪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PTSD 판정 기준인 25점을 넘긴 응답자는 전체의 7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전체 평균 점수는 41.47점으로 판정 기준을 훌쩍 넘어섰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이는 상당히 높은 점수"라면서 "살처분 과정에서의 심리적 충격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PTSD와 함께 나타나는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응답자도 전체의 23.1%나 됐다.
실제로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수의사·군인 등 4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심층면접 조사에서는 이들이 겪은 정서적 고통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이는 직접 대량의 가축을 죽여야 하고, 또 이를 몇 달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살처분 참여자들은 '학살'을 했다는 자책감과 '위에서 시키니 한 일'이라는 자기합리화 사이를 오가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소에 따르면 구제역이 대규모로 확산한 2010∼2011년 겨울 소방방재청을 중심으로 재난심리지원단이 꾸려졌지만, 1회성 사업에 그쳤고 사후 관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살처분 뒤 정신적·육체적 건강 검사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78%에 불과했다.
연구소는 "살처분 과정에서 정신적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는 한편, 참여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