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보호무역 관세가 미국 의료 기기 시장과 제약 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중국산 제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1300개의 품목을 발표했다. 품목 리스트에는 수십 가지의 의약품과 의료 기기가 포함돼 있다. 대표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에피네프린, 당뇨병 치료에 이용되는 인슐린 등도 품목에 올랐다. 만약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큰 위험이 따르는 의약품들이다. 제약 원료뿐 아니라 인공 관절, 맥박 조정기, 세동 제거기와 같은 의료 기기들도 표적이 됐다.
중국의 의료 장비 제조는 수술 장갑과 같은 폐기 용품에서 자기 공명 영상 스캐너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로 확대 발전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의료 기기 산업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월 국제무역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급속한 발전을 이룬 중국 의료 장비 분야는 스포츠 의학 부문에서 사용되는 이식형 정형외과 장치다. 한 전문가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의료 기기의 약 12%가 중국에서 제조됐으며 그 규모는 연간 30억 달러(약 3조2070억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의료 기기 장비 업체인 메드트로닉, 짐머바이오메트 등의 업체들은 미국에서 파는 정형외과 기기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다. 최근 RBC캐피탈마켓츠는 트럼프가 밝힌 25% 관세율이 일제히 적용되면 글로벌 의료 기기 산업에 매년 최대 15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용 증가는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무릎 등 관절 통증을 가장 크게 호소하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큰 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관측했다. RBC캐피탈마켓츠의 브랜든 헨리 의료 기기 전문 애널리스트는 “규모가 큰 의료 기기 업체들이 자사의 제품을 트럼프가 발표한 관세 목록에서 발견하고는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고 말했다. 기기 무역 단체인 아드바메드의 그레그 크리스트 대변인은 “트럼프의 선언은 미국의 환자를 포함해 전 세계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트럼프가 선언한 관세 부과가 실제 단행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제품을 대상을 1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 부과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우려는 더 커졌다. 이 때문에 지난 한 주간 의료 기기 업체들의 주식은 전반적으로 내림세를 기록했다. 메드트로닉은 한 주 동안 2.7% 빠졌고, 지머바이오메트는 2.4% 하락했다.
의약품접근성협회(AAM)는 트럼프의 고율 관세 부과가 미국 내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AAM의 제프리 K.프란서 부회장은 “트럼프가 제시한 관세는 제네릭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분야의 복제약) 등의 제조 단가를 올릴 것”이라며 “이는 미국 내 환자들의 처방 의약품 가격이 상승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의약 원료를 수출하는 주요국임에도 트럼프의 고율 관세가 의약 산업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에버코어ISI의 우머 라페트 제약 전문 애널리스트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중국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이 인도와 같은 국가에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피네프린을 제조하는 업체인 미국 제약사 파제약(Par Pharmaceutical)의 헤더 조우마스 루베스키 대변인은 “원재료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는 우리 업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슐린도 관세 부과 리스트에 포함됐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받을 영향은 분명치 않다. 미국에서 인슐린을 판매하는 엘리릴리, 사노피, 노보노디스크 등 세 개 업체는 중국에서 인슐린 원료를 수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