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 유사수신 등 조직적 사기 범죄로 잃은 돈을 국가가 되찾아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법무부는 17일 '범죄피해재산'도 국가가 몰수ㆍ추징해 피해자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을 담은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행법은 사기와 같이 피해자의 돈을 빼돌려 얻어낸 범죄피해재산의 경우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사기 범죄 피해자는 민사소송 등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민사소송은 범죄자의 형사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고, 형사재판이 확정된 후에는 범죄자가 이미 재산을 은닉한 경우가 많아 피해보상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기 범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비판적 시선도 있다. 법무법인 법승의 이승우 변호사(42ㆍ사법연수원 37기)는 "1년에 적게는 70만 건, 많게는 100만 건씩 사기 범죄가 터지는데 그 중 불기소되는 게 더 많다"며 "사기 사건에서 처벌되는 경우가 많다면 몰수나 추징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몰수ㆍ추징할 수 있는 사건이 몇 건이나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2013~2017년까지 접수된 사기 범죄 사건 중 재판에 넘긴 사건 수는 평균 18%에 불과했다.
이 변호사는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기범죄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으로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을 때 법원은 '과실상계'라고 해서 피해자 스스로 손해가 더 발생하지 않게 막을 수 있었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손해가 클 경우 돌려받을 수 있는 돈 산정에 이를 참작한다"며 "국가가 범죄피해재산을 몰수ㆍ추징해 피해자에게 돌려주게 되면 이런 것들을 고려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돈의 소유 관계'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산이 동결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범죄자의 재산이 제3자에게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그 돈을 증여했는지 빌려줬는지 그냥 맡긴 건지 이런 복잡한 관계를 알기 쉽지 않다"며 "물론 몰수ㆍ추징할 때 그 대상이 적절한지 따져보긴 하겠지만 일단 범죄자의 것이라는 의심이 가면 재산을 묶어둘 수밖에 없어서 제3자의 재산까지 제한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민사재판에서는 이런 돈의 관계가 누적돼 온 민사법제로 객관적으로 소명된 후 피해자에게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또 "사기 사건에서 피해자의 피해회복이 어려운 이유는 범죄자가 이미 돈을 다 쓰고 없기 때문"이라며 "피해회복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예방 조치를 우선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계좌인 '에스크로'를 활성화 해 안전한 거래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크로는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제3자가 상거래를 중계해 믿고 거래하게끔 해주는 매매 보호 서비스다. 이 변호사는 "예방안 먼저 만들고 몰수ㆍ추징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범죄가 발생하기 전 범죄를 최소화하는 제도의 필요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