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서대문구 농협 본점 근처 식당에서 만난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바빠서 직원들의 메시지에 답장이 늦을 때도 있지만, 하나하나 답변을 단다”고 자랑하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 행장의 답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20분 안팎이다. '이대훈식 소통경영'이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용실·세탁소·빵집…동네 민심부터 = 취임 6개월을 맞은 이 행장은 이날도 인천영업본부 현장경영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취임 후 한 달 동안 9개 영업본부를 방문해 5000여 명의 직원을 만난 이 행장은 하반기에는 6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현장경영 행보를 이어간다.
이 행장은 페이스북에도 근황을 간간이 올리고 있다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최근 사진에 달린 “빠마 하시는 미장원이 어딘지 공유해 달라”는 댓글을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만의 ‘미용실 영업’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선 영업점 과장 시절부터 동네 미용실에 항상 카드 신청서와 사은품을 십여 개씩 맡겨 뒀다. 미용실 아주머니는 ‘농협에 이 지점장님 아시죠?’라며 손님들에게 말을 걸어 대신 영업을 해 줬다. 3~4주 만에 미용실에 들르면 15~20장 정도의 신청서가 쌓이기도 했다. 머리를 하면서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2시간 반 정도 앉아 있으면 동네 돌아가는 일은 웬만큼 다 알게 된다.”
미용실뿐만이 아니라 세탁소, 빵집도 일부러 들러 동네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역 영업을 장악했다. 그는 “은행원이 실적 올리기 위해서는 설명을 잘하는 것보다 평소에 친분을 쌓아 둬야 한다. ‘오신 김에 적금 들고 가시죠’ 하면서 말을 건네기보다 평소 친한 직원이 ‘지난번에 손자가 유치원 새로 들어간다고 했는데 울고불고 떼 안 쓰냐’는 식으로 고객 관련 얘기를 하면 거절하지 못한다”고 자신의 영업비밀(?)을 공개했다. 이 행장의 별칭 ‘영업통’은 부지런히 발로 뛰고 지역 주민과 소통한 결과물이다.
이 행장이 저녁 자리에서 제안한 ‘하나로’라는 건배사를 통해 그의 농협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농협에 ‘하나로’는 ‘지역농협과 중앙회, 모든 직원들이 하나가 되자’는 의미”라며 “다른 은행의 상황을 보면 우리처럼 내부에 갈등이 없는 분위기도 없다”고 말했다.
농협은 직원 수 1만6200명, 점포 수 1149개로 전국적으로 큰 덩치를 자랑한다. 이 행장은 “다른 은행들은 서울·경기 부근에 지점이 70% 몰려 있는 것과 달리, 농협은 지방에 70%가 있어 손익이 적게 난다고 해서 점포를 마음대로 줄일 수도 없는 구조”라며 “울릉도, 마라도 등 섬마다 지점이 있는 은행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수익으로 지방 손실 벌충 = 이 같은 분위기는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의 특수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행장은 “직원 수는 많고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지방 점포를 갖고 있다 보니 1인당 생산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농협은 ‘협동조합’의 정신을 원칙으로 탄생했기에 이런 구조가 가능하다.
수도권에서 번 이익으로 지방 점포 적자를 커버하는데, 전국 점포의 4분의 1인 200~300개 점포만이 흑자가 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농협 점포와 농협은행 영업점 간 경영의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그는 “지역농협은 4714개이지만, 외부 고객이 볼 적에는 다 같은 ‘농협’이다. 즉, 6000개가량이 다 농협 점포인 셈이다. 지역 농협과 농협은행이 같은 지역 범주에 들어가면 경쟁이 되고 수익구조가 겹치니까 내부에선 그게 어려움이다. 은행, 지역농협 간 큰 틀에서 협조하되 경쟁할 건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취임 직전 2년간은 상호금융 대표로 근무하며 지역농협의 신용사업을 총괄했다. 그는 “농협은행의 힘은 상호금융과 시너지를 내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농협에 특강을 나갈 때 ‘농협이 외부에서 경쟁력을 갖는 건, 은행과 신용사업 부문을 하나로 보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IB(투자은행) 업무에서 웬만한 금융지주는 40조~50조 원의 여유 자본을 갖고 있지만 은행 입장에선 유동성 관리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야다.
◇10조 정도 적립 후 농민들이 최소 자금 = 이에 상호금융의 독립법인화에 대해 속내를 털어놨다. 이 행장은 “상호금융의 점포는 4714개로 예금 310조 원, 대출 250조 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규모만 봐서는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보다 크다. 장기적으로는 독립법인화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은행이 디지털 서비스나 여수신 신상품 등을 같이 만들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호금융은 독자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상호금융이 독립하려면 은행은 최소 15조~20조 원의 자금이 별도로 있어야 한다. 농협은 상장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결국 그 돈은 농민들이 부담해야 해 쉽지 않은 과정”이라며 “10조 원 정도의 자본금 적립을 마친 후 농민들에게 최소 자금만 받으면 되는데, 이게 10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상호금융은 지난해 말 기준 약 3조 원의 자본금을 적립했다.
이 행장은 취임 후 반년을 쉼없이 달려온 만큼 8월 둘째 주에는 고향인 경기도 포천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는 “그동안 효도도 많이 하지 못했는데 본가에 내려가서 부모님도 뵙고, 우거진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싶다”고 털어놨다. 매사가 ‘농협’ 중심인 그는 아내에게도 ‘일 중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행장은 이번 휴가 때도 북한 관련 서적을 필독하겠다는 계획이다. 남북 경협이 현실화하면서 북한 관련 사업에 열을 올리는 여느 행장들처럼, 이 행장도 ‘농협식 북한 구상’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달 휴가…농협식 북한 구상 밑그림 =하지만 방법론은 확연히 달랐다. “진짜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은 자본주의 시장 개념에 적응하고 소득을 어떻게 늘릴지 고민하는 것이다. 타 은행들은 대출이자나 인프라 투자, 이런 생각만 한다. 그런데 농협은 1970년대 농촌경제 발전 시절에 그랬듯 농민들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농산물을 출하해 농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구조를 북한에도 만들어 주고 싶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이룬 것처럼 농촌 발전의 길을 열어주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레 이 행장이 지역 농협에서 일하던 시절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포천 ‘군지부장’이 되는 게 꿈이었다. 중앙회로 발령이 나면서 시내로 나와 보니 그 당시에 ‘지회장’이라고 불렸던 본부장이 목표로 바뀌었다. 그런데 본부장을 하다 보니 은행장이 멋있어 보였고, 상호금융 대표를 하면서 생각이 더 커졌다. 당시 부행장과 지역본부장급 인사가 45명, 본부장이 17명으로 행장 경쟁률이 62대 1이었다. 행장이 되겠다는 목표로 ‘모든 건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좌우명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남들과 다른 노력을 하고자 했다”고 회상한다.
포천에서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던 막내 시절부터 뼛속에 새겨진 농협인의 DNA가 지금의 이 행장을 만들었던 건 아닐까. 취임사에서 ‘농협은행이 수익센터의 역할을 하겠다’는 부분이 거슬렸다는 그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은행’이 아닌 ‘농협’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사업을 농민 위주로 하겠다. 은행을 하든, 증권업을 하든 우리가 사업하는 목적은 농민을 위한 거다. 그래서 여타 은행장보다 농협은행장 자리가 더 명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 이대훈 농협은행장은…
1960년 경기 포천 출생으로 1985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농협은행 프로젝트금융부장, 서울경기 영업본부장을 거친 정통 ‘농협맨’으로 꼽힌다. 2016년 상호금융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해 12월 농협은행장에 취임했다. 경기 영업본부장, 서울 영업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하위권이었던 실적을 전국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려 ‘영업통’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