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손편지〕 당당한 비혼(非婚), 주눅 든 기혼(旣婚)

입력 2018-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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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예전엔 장사꾼들의 “밑지고 팝니다”, 어르신들의 “어서 죽어야지”, 그리고 처녀들의 “시집 안 가요”가 세상의 3대 거짓말이라 했다. 이젠 처녀들의 “시집 안 가요”를 거짓말 목록에서 빼야 할 것 같다. “판단력이 부족해서 결혼하고 인내력이 없어 이혼하는데 기억력이 흐려져 재혼한다”는 유머도 오래전 등장하지 않았던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동영상 강의 시간에 ‘성, 사랑, 결혼의 순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다. 2000년에도 동일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엔 ‘사랑-결혼-성’(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성관계를 한다)이라 응답한 비율이 약 6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2015년부터 최근까지 매 학기 실시한 조사에선 “사랑-성-결혼”(사랑하는 사람과 성관계를 하고 결혼한다)이라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혼전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한데 올해는 ‘결혼을 선택지에 넣은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다소 과격한 의견이 추가되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획기적으로 바뀌고 있는지, 멀미가 날 정도다. 신세대 여성들은 미혼(未婚)이란 용어를 탐탁지 않아 한다. 미혼 여성이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니 언젠가는 결혼할 여성이란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단다. 대신 현재까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 혹은 결혼에 대한 의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비혼(非婚)이란 용어를 적극 옹호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혼 여성들은 왠지 모르게 주눅 들어 있었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변명하려 했고, 행여 노처녀 히스테리란 소리를 들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비혼의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현재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데 결혼은 장애물일 뿐이다” “여자 친구와 1년 정도 함께 살아보는 동안 결혼 생활에 대한 미련이 깨끗이 사라졌다. 누구와 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한 친구들 모두 나를 부러워한다” 등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오히려 기혼 여성들에게 왜 결혼했는지 물으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푸념을 쏟아낸다. “결혼이 이런 것인지 알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탁기 한 대를 사도 두툼한 사용 설명서가 따라오는데 아이는 사용 설명서 한 장 없이 세상에 불쑥 나온다는 소설의 한 대목에서 격하게 공감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남편이 아니라 아내다” 등 구구절절 다양한 사연이 쏟아진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왜 싱글 여성들에게 그토록 결혼하라는 압력을 넣은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결혼은 지금까지 사회안전망의 구실을 했으니 사회안전망에 들어오지 못한 여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했음직하다. 예전 어르신들은 “신랑 재미 모른다”고 노처녀들을 향해 동정어린 시선을 보냈고, “죽어서 제삿밥도 못 얻어 먹는다”고 혀를 끌끌 차시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국가가 가족을 대신하여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주는 상황이고, 혼전 관계가 규범화된 마당에 남편 재미 운운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제사 관행 또한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는 마당이니 역시 설득력은 약하다.

어쩌면 싱글 여성들을 향한 근거 없는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이 결혼에 대한 압력의 주범이 아닐까? 행여 허약하고 취약한 일부일처제에 싱글 여성이 잠재적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닌가 노파심에 “어서 짝짓기를 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닐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안타깝지만 그럴듯하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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