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1960년대 후반이었으니 지금처럼 피아노 학원 간판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고, 하나 아니면 둘 낳아 피아노에 미술에 태권도에 온갖 잡기(?)를 필수로 가르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나의 간절함은 기억 속에 묻히고 말았다.
새 학년에 올라가면 담임선생님께서 ‘학생생활조사서’ 작성을 이유로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손들어 봐” 하던 시절이었다. 자가용 다음엔 피아노가 있는지 물었고, 그다음엔 전화기나 텔레비전이 있는지, (혼자 쓰는) 공부방과 책상을 갖고 있는지 등을 물으셨다. 지금이야 왜 그런 이상한 질문을 했을까 싶지만, 그때는 손을 번쩍 드는 친구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아쉬움은, 동네 문방구에 가서 종이박스 만들 때 사용하는 딱딱한 종이 위에 피아노 건반 모양을 그려 넣은 ‘종이 건반’을 사서, 도레도레도, 도레미도레미도 입으로 소리 내며, 엄마가 어디선가 구해다 준 바이엘 교본을 보고 연습하며 달랬던 기억도 새롭다.
언젠가 악기를 주제로 한 문화인류학자의 글을 읽던 중,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문화권에는 악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데 타악기, 관악기, 현악기는 모든 문화권에서 빠짐없이 발견되고 있지만 건반 악기가 발견되는 문화는 거의 없다는 사실, 가야금이든 바이올린이든 현악기는 하나의 줄에서 나오는 소리가 일정한 음폭을 갖는 데 반해, 피아노 같은 건반 악기는 정확하게 하나의 음을 낸다는 사실 등이 피아노 사랑을 부추기기도 했다.
몇 해 전 은퇴하신 원로 교수님은 당신 재직 시절 신입생 선발을 위한 면접관으로 참여하실 때마다 수험생에게 “학생은 체르니 40번 이상까지 쳐 보았습니까?” 질문을 던지셨다고 한다. 교수님 기억에 40여 명 중 두어 명을 빼고는 나머지 학생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대신 “지금도 피아노를 즐겨 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너나없이 고개를 저었다 한다. 원로 교수님께서는 한국 교육의 씁쓸한 현주소를 보고 참으로 우울했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체르니를 끝낸 학생들이 주책없이 부럽기만 했던 기억도 있다.
덕분인가, 제자들에게 종종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전 여러분이 말이나 글 이외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가졌으면 합니다. 악기도 좋고 그림도 좋고 사진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여성들에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또 위로하고 달래줄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언어 이외의 표현 수단이 꼭 필요하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데 나에게도 작은 희망이 생겼다. 우연히 음대·미대 교수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 피아노 학원과 미술 학원이 다시 붐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에 그만 귀가 솔깃해졌다. 예전에는 코흘리개들이 주 고객이었다면 지금은 자녀 입시에서 해방된 주부, 퇴직한 회사원, 정년퇴임한 교수 등 어르신들로 주고객층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였다. 열정과 의지로 무장한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재미는 코흘리개 가르치는 재미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그러고 보니 퇴직 후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선배, 사진 기술을 배워 재능기부에 나선 지인, 피아노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진 은퇴 교수님도 계시다. 퇴임 후를 대비한 소일거리를 위해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교수님은 배우는 재미 못지않게 건강유지에도 직접 도움이 된다고 자랑이 늘어진다.
‘나도 언젠가는 손자 손녀들을 위해 아름다운 축하곡을 멋들어지게 연주해주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요즘 내 마음 속의 간절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