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곳간 쌓아놓고도 투자 못하는 이유

입력 2019-03-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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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0대 그룹 상장사들이 보유한 현금이 250조 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정보사이트인 재벌닷컴이 자산 상위 10대 그룹 계열상장사 95곳의 2018년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다. 이들 기업의 연결기준 현금보유액은 248조3830억 원이었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 금융기관 예치금 등을 포함한 것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현금보유액이 125조3900억 원으로 절반 이상이다. 다음으로 현대차 42조7980억 원, SK 28조5500억 원, LG 13조70억 원, 포스코 11조560억 원 등의 순이었다.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기업실적 또한 악화하는데 대기업 곳간에 돈이 쌓일 뿐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한마디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번 돈을 계속 확대재생산을 위해 투자해야 고용이 늘어나고 지속성장이 가능하다. 그럼으로써 국가 경제도 선순환된다. 이 같은 발전 경로가 끊기고 있는 것이다.

투자할 여력이 충분한데도 투자하지 않는 것은 경영 여건의 불안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보호무역주의로 세계 교역은 위축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임금 상승과 노사 대립, 생산성 저하 등으로 산업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의 최대 걸림돌이 규제임은 수도 없이 지적돼온 고질병이다.

재계도 신산업과 새로운 시장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의 혁파를 입이 아프도록 호소해왔다. 기업들의 자유로운 투자로 사업 기회를 만들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네거티브’ 규제개혁이 오래전부터 강조돼 왔음에도 개선된 게 없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으로 생색을 내고 있지만, 특정 기업과 사업에 국한돼 실효성이 의문이다. 규제 샌드박스 무용론(無用論)도 나온다. 규제완화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글로벌 경쟁의 ‘시간싸움’을 벌여야 하는 신산업에 적기 대응하기 어렵다.

더구나 정부·여당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대기업 규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를 흔드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한 감사위원 분리 선임,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폐지 등은 경영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행사 지침) 강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기업 경영권을 보호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 그러니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해외 투기 자본들이 국내 대기업 경영권을 공격하고 터무니없는 배당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 확대에 쓸 돈과 시간을 경영권 방어에 쏟아야 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올해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에 투입하는 돈이 20조 원 규모라고 한다. 대기업들이 미래를 대비한 투자를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걸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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