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기준 10개 금융지주사의 총자산은 2590조 원이다. 이 가운데 신한ㆍKBㆍ하나ㆍ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총자산은 370조~490조 원에 달한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340조 원)보다 많고, 내년 우리나라 국가 예산(513조 원)에 버금간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재벌과 달리 주인이 없다. 권력에 줄을 잘 대거나, 당국의 감시망을 잘 피해도 수백조 자산을 가진 회사의 정점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찬 바람이 불면 덩치에 안 맞게 볼썽사나운 싸움이 벌어진다.
신한금융이 한 달이나 일찍 회장추천위원회를 꾸린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조용병 회장은 현재 채용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1심 결과는 12월에 나온다. 으레 법적 리스크가 있으면 회추위 구성을 미룬다. 하지만 조 회장과 막역한 관계에 있는 사외이사들은 리딩뱅크 성적표를 바탕으로 일정을 밀어붙였다. 수면 아래서 대권 도전을 준비하는 위성호 전 행장과 그에게 줄을 대려는 구성원들에 대한 조 회장의 경고다.
우리금융도 올 초 출범을 앞두고 자천타천 난립한 후보로 시끄러웠다. 조직 안정을 위해 사외이사들은 손 회장의 1년간 행장직 겸임으로 갈등을 잠재웠다. 하지만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속에서 내년 3월 회장직 임기 만료가 다가오자 잠룡들이 꿈틀대고 있다.
이런 갈등의 원인은 금융지주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금융지주 수익의 70% 이상은 은행서 나온다. 그런데 금융지주 회장은 은행장보다 서열이 높다. 힘의 불균형이다. 옥상옥의 대표적 폐단이 2014년 있었던 KB사태다. 당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주전산기 교체를 두고 막장극을 연출했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상대방을 헐뜯기 위해 조직의 치부까지 드러냈다. 두 수장이 물러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KB금융은 그 상흔을 덮기 위해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관치(官治)와 감시의 선을 넘나드는 금융당국의 한마디도 파동을 몰고 온다. 올해 초 함영주 KEB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 부회장)은 업계 예상을 깨고 연임을 포기했다. 금융감독원이 하나은행 사외이사들을 만나 우려를 표한 것이 낙마 계기가 됐다. 금감원은 2년 전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에게도 “특혜 대출 의혹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니 회장 선출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당국의 말을 따르지 않고, 3연임을 확정했다. 2021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내년 하반기부터 자리 전쟁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지분 취득으로 예외가 생기긴 했지만, 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걸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재벌의 사금고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힘없어 보이는 돈은 탐욕의 먹잇감이 된다. 하지만 오해이고 착각이다. 그 돈의 임자는 고객과 주주다. 먹고살 돈을 지켜보는 눈은 촘촘하고 매섭다. 권력 전쟁에 나서는 이들은 꼭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 주인 없는 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