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서울시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일대 13만2379㎡를 재개발해 연립주택 216가구, 단독주택 45가구로 이뤄진 고급 주거단지를 짓는다는 구상이었다. 강남 도심과 가까운 데다 청계산 등 녹지도 풍부해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그 해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 위기가 개발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시행사였던 동양건설산업과 삼부토건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10년 넘게 사업이 표류했다. 개발업자가 헌인마을에서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을 하겠다며 최순실 측에 뇌물까지 건네는 일까지 있었다. 헌인마을에서 13년째 가구점을 하는 A씨는 “차라리 보상을 받고 가게를 정리할 수 있었으면 마음은 편했을텐데….이젠 버려진 동네가 됐다” 푸념했다.
지난해 미래에셋대우를 중심으로 개발을 재추진하고 있지만 갈등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시행 대행사인 헌인타운개발과 도시개발사업 조합이 사업 주도권을 두고 맞서고 있어서다. 각자 상대방이 권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사업에 끼어들고 있다며 대립하고 있다.
지자체가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한다는 데는 양측이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 사업을 인가했던 지자체에서 이해관계를 정리했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주장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조합 내부에 문제가 있어 실시계획 인가에 필요한 보완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에선 할 수 있는 건 제출 독려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인마을처럼 장기간 표류하는 개발사업이 늘고 있다. 장밋빛 청사진을 내걸고 개발을 추진했지만, 사업성 부족으로 휘청인 경우가 대다수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방관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개발을 하지도, 대안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지역은 방치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구 지정 후 10년 넘게 준공하지 못한 도시개발구역과 택지개발사업지구는 2018년 말 기준 1억4526만㎡에 이른다. 이 가운데 입주를 시작하고도 세부시설 구축이 늦어져 준공을 못하는 곳도 있지만 아예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방치되는 곳도 적잖다. 수도권에서만 헌인마을을 포함해 서울 구룡마을, 인천 동인천역 재정비촉진사업 1구역·송도 대우자동차판매 부지 구역, 경기 수원시 영화문화관광구역, 용인시 이동 송전구역·역삼구역, 평택시 동삭·세교구역, 안산시 화랑역세권 도시개발구역 등이 착공도 못하고 있다.
경기도 한 지자체의 도시개발사업 담당자는 “애초 타당성 조사가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끌고 나가기 힘들다”며 “토지 가치도 똑바로 평가 안된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하다 분양가가 올라가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인천시 도시개발사업 담당자는 “개발 규모가 클수록 주민 갈등이 많고 사업도 늦어진다”며 “갈등 해소가 가장 중요하지만 지자체는 자문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서충원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는 “도시개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업성이다”며 “케이스별로 따져봐야겠지만 사업성을 기초에 두고 무리하게 개발을 추진하는 건 아닌지, 사업성에 비해 보상이 적정한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