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AI'는 사회 곳곳에 적용돼 활약하고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찾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가깝고도 멀리 있는 인공지능. 어디서, 어떻게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는지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대학생 A 씨는 소셜 미디어에서 음란물, 이른바 야동을 구매했다. 판매자가 제공한 공유 드라이브에서 이를 내려받았다. 동영상을 확인한 A 씨는 깜짝 놀라 곧바로 모든 자료를 삭제했다. 미성년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에 처벌받을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변호사를 만나기도 쉽지 않아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A 씨의 사례는 법률 AI(인공지능) 업체 인텔리콘연구소(이하 인텔리콘)가 운영하는 법률 Q&A 시스템인 ‘법률메카’에 올라온 것을 각색한 내용이다. 이 질문에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음란물소지)에는 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현직 변호사의 답변이 달렸다. A 씨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살면서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할 터. 그럼에도 비용, 타인의 시선 등의 이유로 변호사를 찾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젠 '법률 AI' 덕분에 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법률상담, 이젠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듯이
'리걸테크'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법률과 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서비스다. 이를 전문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생겨나면서 산업도 형성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국내에서는 인텔리콘이 가장 선두주자로 꼽힌다. 인텔리콘은 법률에 AI를 접목해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법령·판례 검색엔진인 ‘유렉스’, 법률 Q&A 시스템인 ‘법률메카’, 계약서 자동분석기인 ‘알파로’가 주력 서비스다.
이투데이에서는 이처럼 법률 AI 업계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임영익 인텔리콘 대표를 만나 리걸테크와 법률 AI의 현주소 및 전망을 들었다.
법률 AI는 특정 사건에 관한 법률을 추론해준다. 변호사를 만나지 않아도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 가령, B 씨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해보자. B 씨는 인터넷에서 관련 법을 찾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법 속에 '뺑소니'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법률 AI는 일반 용어나 속어를 넣어도 이것을 인지해 관련 법을 알려준다. 포털 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하듯 몇몇 단어와 문장을 입력하면 관련 법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빠르고, 간편하게 말이다.
"법률 AI가 판례를 찾는 것은 기본이에요. 1~2초 만에 바로 나오죠. 이미 학습이 끝난 상태니까요. 지금은 법률을 추천해줄 수 있어요. 특정 사안은 법이 너무 많아서 변호사들이나 일반인들도 잘 모르기도 해요. 그래서 변호사들도 도움을 받죠. 일반인들은 당연하고요. 사실 전문가의 역할이 '없는 것을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인공지능은 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으로 탐색해야 하고, 인공지능이 빠르게 할 수 있죠." (임영익 대표)
◇"법률 AI가 법조인 생계위협? 제 생각은…"
법률 AI가 더욱 대중화되면 시민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커진다. 당장 변호사를 찾지 않고도 관련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금한 점은 참 많지만 당장 변호사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알음알음 알아가는 것이 현실. 일반 시민들에게 법은 여전히 문턱이 높은 편이다. 법률 AI는 법에 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성범죄에 휘말리거나 빌려준 돈을 떼이는 일이 아니더라도 실생활에서 알고 싶은 내용을 검색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역할이 줄지는 않을까. 가뜩이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전문직인 변호사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면 이는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비화할 공산이 크다. 이에 대해 임 대표는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영국에서 리처드 서스킨드라는 학자가 인공지능으로 인해 변호사가 50%는 사라질 것 하면서 화제가 됐어요. 그런데 '법률 비서'를 변호사로 해석해버리면서 그 수가 늘어났죠. 직원이 없어진다는 것인데…. 영미법(영국·미국계통의 법)은 판례가 중요해서 이를 잘 찾고 논리를 만들어야 해요. 법률 지원 그룹의 일이 많은 것이죠. 이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는 있지만,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임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단순한 정보를 찾아 표출하거나 내용이 긴 정보를 축약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복합적인 추론, 사람과의 긴밀한 소통을 통한 정보 취득 등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임 대표는 변호사나 기자 등의 직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빅데이터 더 필요…국내 리걸테크 산업 규모 약 3000억
인텔리콘은 인공지능을 접목시킨 리걸테크 회사로 아시아를 통틀어 최고 기술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중국보다 발전속도가 느리기 때문. 데이터가 많아야 인공지능이 학습할 재료가 생기는데 한국은 데이터 생산 속도가 느려 전체적인 산업의 발전 속도도 더디다.
"법률 AI, 리걸테크 산업이 더 발전하려면 대법원에서 데이터를 많이 공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대법원이 1심 판례를 전면공개하지 않고, 1% 이하로만 공개하고 있죠. 데이터 구하기가 힘듭니다.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법률 데이터도 공개해야 하고요. 또 재판 결과에는 개인정보가 들어 있어서 이를 함부로 쓸 수도 없어요. 반면에 중국은 법률 데이터를 전면공개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죠."
리걸테크는 미국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다. 미국 법률시장 규모가 400조 원가량 되는데 그중 10%, 약 40조 원을 리걸테크 기업이 가져갈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 비대면 상담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성장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임 대표는 한국 역시 관련 산업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리걸테크에 접목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딥러닝기술이 발전하면서 문서 분석이나 법률 예측하는 영역을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죠. 리걸테크 분야만 봐도 벌써 일본에서는 상장하는 회사도 나왔고요. 한국은 조금 늦게 성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국내 산업 규모요? 미국 리걸테크 산업을 기준으로 역 추론하면 3000억 원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