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따뜻한 복지보다 '올바른 복지'가 먼저다

입력 2020-05-31 13:00 수정 2020-06-0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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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돈 나올 구멍이 있나요? 결국, 소득세나 법인세 인상, 그리고 국채발행으로 빚 늘리는 수밖에 없겠죠.”

얼마 전 만난 대기업의 한 임원과 나눈 ‘긴급재난지원금’ 이야기는 ‘받은 돈 어디에 쓸까’라는 행복한 고민으로 시작해서 ‘정부가 이 많은 돈을 다 조달할 곳은 고소득층과 대기업뿐일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성 기우로 마무리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증세 불가피론에 불을 지폈다. KDI는 ‘2020 상반기 경제전망’ 발표에서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장기적’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편적 증세’가 없음을 수차례 천명했기 때문에 세금을 올려야 한다면 결국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을듯싶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법인세수 전망치는 56조5000억 원이다. 정부 예산액 64조4000원보다 12.3% 부족하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올해 법인세수 결손액은 7조9000억 원에 달한다.

국세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으니 약 8조 원의 결손액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법인세수의 절대 규모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대비 법인세 부담을 주요 국가와 비교해보면 한국은 8위인데 미국이 28위, 프랑스 28위, 영국이 16위다. 규모와 비중이 모두 크다 보니 이쪽에서 구멍이 나면 다른 데서 벌충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리쇼어링(해외 공장의 국내 유턴) 바람이 불면서 미국은 유턴 기업에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비와 공장 이전 보조금 등으로 지원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법인세 인상을 통한 세수확충방안은 ‘역주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소득세 역시 왜곡돼 있다.

2018년 기준 전체 근로자 중 상위 30%인 560만 명이 전체 근로소득세(38조3078억 원)의 94.9%(36조3078억 원)를 냈다. 반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근로자 비중은 전체의 약 40%나 된다. 고소득자로부터 걷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준다고 하기에는 세금부담 편중이 기형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1년 후면 대선정국에 들어가서 여론 눈치 보느라 추가로 세금 걷기가 힘들어지면 정부는 빚을 내야 한다. 국채발행이다.

문 대통령은 늘 국가채무비율에 대해 관대하고 자비롭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우리나라의 채무비율이 낮다는 점이 근거다. OECD 평균은 110%인데 우리나라가 40%를 마지노선으로 잡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고 주장이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들의 부채비율은 대부분 OECD 평균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뉴질랜드가 35%, 호주 44%, 노르웨이 46%, 덴마크 48% 수준이다.

더욱이 지난 1분기 합계 출산율이 0.9명에 그쳤고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고령화 길을 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채무비율 40%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정부에 공기업 부채를 합친 공공 부분 부채는 1078조 원으로 GDP 대비 56.9%에 달해 이미 60%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고령사회 진입 당시 85%(1994년)였던 국가채무비율이 2018년에는 239%로 치솟았다. 프랑스는 1979년 21.2%에서 지난해 122%로 국가채무비율이 상승했다.

정부가 꿈꾸고 있는 따뜻한 복지의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복지제도는 올바르게 설계돼야 한다.

올바름의 전제조건은 3가지다.

우선 실질적인 세수 확보 방안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세금을 낼 수 있는 소득 있는 중산층 복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자본가계급의 착취’라는 프레임을 걸어 고소득층과 대기업에서 세금을 뜯어 골고루 분배하는 건 정부의 역할도 정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복지투자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여기에는 국민의 실효적, 암묵적 동의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춰야 복지 포퓰리즘 논란을 비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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