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누리] 수릿날엔 부채 선물을

입력 2020-06-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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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팀장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로 화려하게 단장한 여인이 그네에 왼쪽 발을 올리고 있다. 그네를 타려는 것인지, 다 타고 내려오는 모습인진 알 수 없다. 그 옆 나무 그늘에선 두 여인이 머리를 손질하고, 냇가에선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걷어올린 여인들이 몸을 씻고 있다. 뽀얀 허벅지와 젖가슴에 은근슬쩍 눈이 간다. 새참인 듯 먹을 것과 술병을 챙겨 머리에 인 여인도 젖가슴을 다 드러낸 채 걸어오고 있다. 이 기막힌 광경을 까까머리 동자승 둘이 바위 뒤에 숨어 훔쳐보고 있다. 혹여 들킬까 봐 두리번거리며 침을 꼴깍 삼키는 표정에서 화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1758~?)의 그림 ‘단오풍정(端午風情)’을 본 나의 감상이다. ‘혜원은 몰카의 원조격’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빙그레 웃는다.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모습을 카메라 대신 화폭에 담았을 뿐이다.

여인들은 왜 단옷날 계곡에서 몸을 씻고 그네를 탔을까? 단오는 예전엔 설날, 추석과 더불어 3대 명절이었다. 때문에 이날만큼은 여인들이 자유롭게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더위가 시작되는 시점이니, 여인들에겐 냇가에서 몸을 씻고 창포물에 머리 감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그네를 타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을 게다. 여성의 외출을 억제했던 조선 후기, 단옷날의 그네는 담장을 넘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자유’의 기회였을 게다. 남자들에게도 신나는 날이었다. 창포 뿌리를 잘라 허리에 차고, 창포 뿌리즙과 찹쌀로 빚은 창포주를 마시며 씨름, 활쏘기, 탈춤 등을 즐겼다.

창포의 정체가 궁금하다. 창양(菖陽)이라고도 불리는 창포는 주로 약재로 쓰였다. 의료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창포주를 마셨고, 창포로 담근 김치인 창촉를 먹었다. 아이들에게는 머리에 비녀처럼 창포 줄기를 꽂아줬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대, 머리를 만져주며 자식의 무병장수를 빌었던 부모의 심정이 느껴져 먹먹하다.

한의사 친구한테 물어보니 창포의 효능이 대단하다. 차로 끓여 꾸준히 마시면 눈과 귀가 밝아지고 목소리도 고와진다. 특히 더운 계절엔 땀띠 예방은 물론 피부 관리에 창포만 한 것이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포(창포 추출물로 만든 샴푸)로 머리를 감아보니 푸석푸석하던 머리카락에서 윤기가 나고 향도 아주 좋다. 혜원의 그림을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사는 자연의 비법을 배웠다.

오늘은 음력으로 5월 5일 단옷날이다. 한자 ‘단(端)’은 첫 번째를, ‘오(午)’는 다섯을 뜻하는 만큼 단오는 ‘초닷새’를 의미한다. 이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와, 햇볕이 강한 날이라 하여 단양(端陽),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한다. 또 오(五)의 수가 겹쳐 중오절(重午節)이라고도 하는데, 선조들은 이날을 양기가 왕성한 절기로 생각했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홀수는 ‘양(陽)’, 짝수는 ‘음(陰)’의 수로, 양의 수가 좋다. 따라서 홀수가 중복된 설날(1월 1일)·삼짇날(3월 3일)·칠석(7월 7일)·중양절(9월 9일)과 더불어 단오를 귀한 날로 여겼다.

단오의 순우리말은 수릿날이다. 쑥으로 수레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고, 조상대대로 이날 수리치로 떡을 해 먹었기에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여러 유래설 중 ‘동국세시기’ 5월조 기록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말 이름 수릿날은 쑥떡을 해 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명칭이 붙었다”라는 대목이다. 단오, 단양, 천중절, 중오절 등 한자보다는 우리 이름 수릿날이 정감 있으니 되살려 쓸 이유가 크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말이 있다. 더위와 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라는 뜻일 게다. 습한 데다 기온도 한껏 오른 수릿날, 합죽선(合竹扇)으로 더위는 물론 마음속 걱정도 식혀야겠다.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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