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990년대 말, 정부의 '수입선 다변화 정책'에 따라 우리 자동차 시장이 완전히 개방됐다.
이 무렵 '수입차=고급차'라는 등식이 뚜렷했던 만큼, 이 분야의 홍보와 마케팅은 우리에게 생경했다. 값비싼 고급 소비재를 상대로 제대로 된 시장 전략을 짜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개방 초기에는 외국계 기업이나 고급호텔 홍보실 출신의 여성 인재가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이제 수입차 업계의 여성 인재는 ‘홍보와 마케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남성조차 버거운 서비스 분야와 네트워크 발굴 등 다양한 영역으로 여성의 역할론이 확대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인 데다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뚜렷했던 수입차 업계에서 유리천장을 뚫고 올라선 2명의 인재를 차례로 만났다.
글 싣는 순서
①조명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부사장
②송경란 볼보자동차코리아 전무
△본인 소개 먼저 부탁합니다.
스웨덴 볼보의 한국법인인 '볼보코리아'에서 고객 서비스(Customer Service)를 총괄(전무)하고 있습니다. 송경란이라고 합니다.
2000년에 볼보코리아에 합류했으니까 올해로 벌써 21년째가 됐네요.
입사 때부터 부품 관련 부서에서 경력을 시작했어요. 2011년부터 고객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담당하고 있는 CS 업무를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볼보의 신차 품질관리부터 전반적인 서비스를 총괄하는 일이에요.
여기에다 부품관리나 기술지원, 보증이나 리콜, 국내인증, 고객관리 등등 차를 판매한 이후의 모든 고객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외국계 회사'는 수평적이고, 성별에 따른 차별도 덜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실제 현장은 어떤가요?
사실 요즘은 외국계 기업뿐 아니라, 국내기업도 능력과 열정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잖아요.
그런데 볼보 본사가 있는 스웨덴은 특히 달라요.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나 성적 평등 수준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거든요.
남성과 여성이 정치 사회적으로 동등한 기회와 보상을 얻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별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성 소수자까지 차별하지 않고 평등해야 한다는 게 잘 어우러져 있어요.
그래서인지 볼보자동차에서 일해온 지난 20년 동안 성별로 인한 차별을 겪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스웨덴 볼보 본사의 분위기도 알려주세요. 특히 스칸디나비안 럭셔리를 추구해온 만큼, 기업 자체에 보수적인 분위기가 서려 있는데요.
처음 스웨덴 본사에 출장가면 모두 깜짝 놀라는 게 있는데 그게 ‘수평적인 의사소통’입니다.
스웨덴은 아무리 높은 임원도 신입사원과 함께 자유롭게 FIKA(스웨덴식 커피 타임)를 즐겨요. 이런 통로를 통해서 편안한 분위기로 서로 의견도 나누고요.
볼보 한국법인도 마찬가지예요. 자유롭게 팀원과 의견 교환하고, 매달 전 직원이 모여서 회사의 현재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타운홀 미팅’이에요.
그때마다 대표에게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것도 자유롭게 물어보고, 또 그만큼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변도 받을 수 있어요.
이런 문화가 있으니까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고,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현재 조직에서 맡는 분야에 대해 향후 계획도 알려주세요.
우리 볼보가 작년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연간 1만 대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어요.
이후에 우리가 새로운 목표를 세웠는데요. 그게 ‘서비스 넘버 원’입니다.
수입차 서비스 고객만족 1위를 위해 꽤 노력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2023년까지 서비스센터와 워크베이를 약 2배까지 늘릴 겁니다. 정확하게 93%, 95%씩 늘어날 거에요. 지금보다 서비스받기가 한결 쉬워지겠죠?
지난달에는 수입차 최초로 ‘평생 부품보증’도 내놨어요. “안전하게 오랫동안 볼보자동차를 타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수입차 업계에서 서비스 분야 총괄 여성임원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국내 기업에서도 여성 임원을 많이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아무래도 외국계 회사라는 특수성 덕에 유리천장을 깨기 쉬웠겠죠.
무엇보다 서비스 부서에서 여성임원 혹은 부장급 여성매니저는 사실 거의 없었어요. 이 사회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요.
여성의 영역이 커지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성별 제한 없이 자유롭게 흥미를 갖는 대상을 경험시켜 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볼보코리아, 나아가 외국계 기업을 통해 사회 첫발을 준비 중인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여성이 하기 좋은 일, 하기 쉬운 일을 구분하지 마세요. 여성이 승진하기 쉬운 일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구분 없이 내가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가슴이 뛰는 일을 고르면 됩니다.
그동안 여성이 승진하기 어려웠던 업계라고 해도 열정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 분야의 ‘최초’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굳이 꼭 ‘최초’가 아니면 어때요. 한 번 사는 인생,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