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예고한 사전청약제 물량 확대가 전세대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씨가 마른 전세시장에서 사전청약에 나서려는 전세 수요가 서둘러 전셋집 구하기에 나설 경우 전쟁 아닌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10일 ‘주택시장 안정 보완대책(7·10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택 공급 방안 중 하나로, 사전청약제 물량을 기존 9000가구에서 3만 가구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당장 올해 말부터 경기 남양주시 왕숙, 하남시 교산, 과천시 과천지구, 인천 계양지구 등 3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사전청약 물량이 나올 전망이다.
사전청약제는 본청약 1∼2년 전에 일부 물량에 대해 앞당겨 청약을 진행하는 것으로 일종의 청약 ‘예약’ 형태를 말한다. 사전청약에 당첨된 사람은 본청약 때까지 자격을 유지하면 100% 당첨된다. 정부는 3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수도권 내 공공택지에도 사전청약제를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시장에선 사전청약제가 조기 공급 시그널로, 예비 청약자들이 막연하게 청약을 기다려야 하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꼽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사전청약제는 주택 수요자가 미리 내 집을 ‘찜’ 하는 것이어서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조급함’을 덜어줄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제도가 되레 전셋값 상승을 압박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우선공급을 받으려는 대기수요가 사전청약제 물량이 풀릴 만한 지역으로 전입하거나 전세시장에 눌러앉으면서 전셋값 상승이 사실상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5월 정부가 3기 신도시에 대한 사전청약제 시행을 예고한 이후 경기 하남시 아파트 전셋값은 연일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남 교산신도시 청약을 노린 대기수요가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서둘러 하남시 일대 전셋집 찾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사전청약제를 토지 보상이 끝난 공공택지에서만 진행할 방침이다. 과거 사전청약제 시행 당시 길게는 7년 후에야 본청약을 시행해 청약 예정자들이 기다리다 지쳐 사전청약 자격을 포기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주택 공급 과정엔 다양한 변수가 많아 속도가 지연되기 일쑤여서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입주 때까지 기존 주택을 매입하지 않고 전세를 살아야 한다”며 “결국 서울ㆍ수도권 전세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세 물량은 이미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KB전세수급동향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67.5를 기록했다. 이 지표는 0~200 범위에서 산출되는데 기준점인 100을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이 심하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이보다 더 높은 173.3이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한 데다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강화 예고로 전세 물량을 반전세(보증부 월세)나 월세로 전환하는 집주인들이 속출한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늘어나는 청약 대기 수요와 지난 6·17 대책으로 인한 실거주자 증가, 임대차 3법(전월세 상한제·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예고 등도 전세대란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공급이 부족하다 보니 가격 상승세도 꺾이지 않으면서 서울 전셋값은 이미 54주 연속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