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부산행'과 '서울역'에 이은 '연니버스'(연상호와 유니버스의 합성어)의 확장을 주목하고 있다. 반도는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데 이어 대만·싱가포르·홍콩·베트남·말레이시아·일본 등 아시아부터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러시아, 북미·남미는 물론 오세아니아·인도·중동까지 총 185개국에 선판매되며 개봉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반도'가 칸 영화제에 출품되는 것도 반대했어요. 칸이 좋아할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웃음)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반도' 개봉을 앞둔 연 감독을 만났다.
◇순제작비 150억…"100% CG로 만들었습니다" = 연 감독은 기획 단계부터 순제작비를 150억 원대에 맞추기 위해 고심했다. 애니메이션을 했던 경력 덕분에 CG(컴퓨터그래픽) 사와 미팅할 때도 CG 솔루션에 대해 강력하게 호소했다. 미술팀이 최소한의 예산을 미술적으로 효과 낼 수 있도록 고민해준 덕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인천항에 처음 들어올 때 길과 구로디지털단지역, 정석이 사고가 날 때, 마지막 인천항이 모두 같은 세트예요. 631부대의 아지트도 침수가 돼 있는 데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방수작업을 하려면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물이 차 있어야 훨씬 액션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미술팀에서 노력해줘서 그 작업을 이뤄냈죠."
영화 '매드맥스'를 떠올리게 하는 카체이싱도 CG 작업으로 만들어냈다. '부산행'에서 좁은 기차 안에서 이뤄진 액션 장면이 카타르시스를 자아냈다면 '반도'는 카체이싱을 액션 콘셉트로 잡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매드맥스'급의 카체이싱 장면을 찍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도로 확보 문제는 물론이고, 어렵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연 감독은 "간단했다"며 "100% CG로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제가 결정을 애매하게 해서 어느 정도는 찍고 어느 정도는 CG로 가자고 했다면 예산이 2배 가까이 뛰었을 거예요. 우리나라 CG 기술력이 이 정도까지 될 것이라고 믿었어요. 액션 카체이싱 장면 회의만 무술감독하고 3개월 정도 했던 것 같아요. 현실성이 있으면서 제가 원하는 액션 콘셉트를 짰어요. 촬영 전에 거의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놨어요. 거의 그대로만 찍었죠."
◇"코로나19 이전부터 플랫폼에 대한 고민 해왔다" = 연 감독은 꽤 오래전부터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비견하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극장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극장용 영화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때문에 극장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올 초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한국 영화가 극장에 의존을 많이 하는 구조잖아요. 코로나19가 여름에 없어진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과연 올지 생각하면서 극장용 영화를 개봉하게 됐네요. 예전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지점이 한정적이었다면 이젠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극장에서 봐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더 커진 거죠."
연 감독은 플랫폼 간의 연계, 나아가 플랫폼의 다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영화 이전부터 웹툰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났고 최근엔 드라마 '방법' 작가로도 참여한 그는 최규석 작가와 웹툰 '지옥'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려고 준비하고 있다. "웹툰의 매력은 플랫폼에 있어요. 한국의 웹툰이 전 세계 플랫폼을 확장하기도 했죠. 그 지점을 잘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플랫폼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게 연 감독의 생각이다. 영화는 영화하는 사람들끼리, 드라마는 드라마하는 사람들, 웹툰은 웹툰하는 사람들끼리 교류했던 것에서 벗어나야 대중의 요구에 맞을 수 있는 콘텐츠가 개발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반도'는 큰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는 직관적인 체험적 효과를 중심으로 생각했다면 '방법'은 일주일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스토리를 퍼즐 형식으로 구상했어요. 앞으로 극장이 체험 중심적으로 갈지는 모르겠어요. 현재는 플랫폼을 이해하는 단계이기 때문이죠. 극장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드라마, 웹툰의 컬래버레이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모성애'·'바이러스'…시국 반영한 영화? =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눈에 띈다. 운전대를 쥐는 캐릭터가 모두 여성이며 남성 캐릭터에 기대거나 도구적 역할로 쓰이지 않는다. '부산행'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몇 년 후 세상의 중심 이슈가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거친 남성 중심의 액션 영화에서 흐름이 바뀔 거라는 것은 '부산행' 때도 알고 있었고요. '부산행'은 개봉 2년 전부터 기획했는데, 기획할 때와 달리 '부산행'이 개봉한 후 시대적 요구들이 있었죠."
민정 역의 이정현은 가녀린 체구에도 총을 자유자재로 겨누며 631부대와 좀비에 맞서 싸우는 두 아이의 엄마다. 이레는 화려한 카체이싱 드래프트 실력으로 좀비 떼를 쓸어버린다. 강동원(정석 역)이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간다면, 초중반에 영화 구조가 리세팅될 때 이레를 등장시켰다.
"처음 콘셉트를 잡을 때 어린아이가 덤프트럭을 모는 듯한, 이질적인 그림을 그렸어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배경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부산행'에서 마동석 배우의 매력이 맨손으로 좀비를 때려잡는 거잖아요. 그걸 능가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뛰어넘을 근육질의 배우가 있지도 않잖아요. 그래서 역으로 어린 소녀가 아주 거칠게 카체이싱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았죠."
현실의 코로나19 사태 속 바이러스로 반도가 초토화됐다는 설정도 주목할 만하다. 연 감독은 이에 대해 "크게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영화 초반부엔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 상황하고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후반부까지 보면 전체적으로 액션 오락 영화예요."
다만 연 감독은 영화를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이나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했다.
"몇 년 후 우리 사회가 같이 공명할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있었어요. 몇 년 후의 사회를 예측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영화는 기획을 수년 전에 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보편적인 주제, 메시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부산행' 엔딩의 메시지는 오히려 지금 시대엔 암울하게 다가올 것 같아요. '반도'를 보시고 희망을 얻어가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