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 부회장 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사실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어 이 부회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통상적인 경영 활동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범죄라는 검찰 시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함께 기소된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과 이영호 삼성물산 대표이사 측도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의 변호인은 “이 사건 합병은 정상적인 경영 활동에 따른 것으로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나아가 피고인들이 임무에 위배된 행위도 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내년 1월 14일 오전 10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은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와 변호인 측의 의견을 듣고 향후 입증 계획 등을 정리할 예정이다.
검찰은 삼성 미래전략실이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계획했다고 봤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중요 단계마다 보고를 받아 승인해왔다고 보고 9월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 10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 재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여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여부 △경영권 승계 관련 이 부회장의 인지 여부 등 크게 세 가지 쟁점을 두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5월 두 회사의 합병 계획을 발표할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경영권 확보의 핵심으로 불리던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제일모직 주식 가치가 높을수록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셈인데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는 제일모직 주식 0.35주로 계산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40%를 갖게 됐다. 이는 간접적으로 삼성전자 지배력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두고 검찰은 삼성이 조직적으로 삼성물산 가치를 낮춰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 측은 두 회사의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없고, 삼성물산 시세 조종 등의 행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합병 비율 조작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나서 공소사실에 한 줄도 적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합병 비율 조작이 없고 법령에 따라 시장 주가에 의해 비율이 정해진 기업 간 정상적인 합병을 범죄시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 재판의 쟁점 중 하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 원대 분식회계 의혹이다.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로, 가치가 높을수록 1대 0.35 합병 비율의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에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부채를 감춰 가치를 부풀린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 재무제표 주석에 바이오젠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콜옵션 세부 내용을 은폐했고, 2015년 재무제표엔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기존의 연결회계 처리를 지분법으로 바꿔 통합 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을 과다 계상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반면 삼성 측은 관련 행정소송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가 증가함에 따라 회계기준에 부합하게 처리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내용도 공시했기 때문에 회계부정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2년과 2013년 상황에서 봤을 때 연결회계로 처리해야지 지분법으로 하면 오히려 분식회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선 쟁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 부회장의 개입 여부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측과 경영권 승계에 대해 밀접하게 논의한 내용을 공소장에 적시했다. 또 이 부회장이 바이오젠 CEO를 찾아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과 콜옵션 행사 여부를 물었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한 예로 검찰은 2018년 5월 5일 이른바 ‘어린이날 회의’를 통해 삼성 임원들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관련 증거를 없애기로 했고 같은 달 10일 이 부회장 주재로 열린 ‘승지원 회의’에서 결과를 보고받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회의는 열렸지만, 회계 관련 내용은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해서도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