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사 유동성 지원을 위해 '대주단 가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건설사와 은행권이 서로 '이권'을 놓고 신경전에 돌입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건설사들 입장에서 대주단 가입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최대한 은행권으로부터 '독립'을 확보하고, 또 모양새를 갖춰 가입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은행권은 '전주(錢主)'라는 기득권을 충분히 활용하고 싶어한다.
여기에 건설업체 유동성 지원이 금융권 동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은행들이 대주단 지원 폭 축소를 위해 일괄가입을 받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은 지난 17일이다. 당초 대주단 가입 시한은 17일이었으나 가입 업체가 단 한 곳에 지나지 않은 등 실적이 저조하자 국토해양부와 금융위원회는 23일까지 시한을 연장했다.
그러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은행연합회는 곧장 보도자료를 통해 "23일 가입시한은 사실이 아니며 2010년 2월까지 자유롭게 대주단에 가입할 수 있다"며 반박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다툼이 건설업계를 총괄하는 국토해양부와 은행권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의 '수싸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초 23일 대주단 가입 시한 연기는 국토해양부 쪽에서 제시된 안으로 알려졌다. 국토부가 23일로 시한을 못박은 것은 건설사들의 대주단 일괄가입을 위한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건설업계는 개별적으로 대주단에 가입할 경우 은행들의 경영권 침해와 함께 회사 이미지 실추 위험을 리스크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만큼 30~40곳 이상 건설업체들이 일괄가입 하게 되면 이 문제가 크게 희석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회사는 현재 대주단 가입에 대해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가입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개별 가입시 경영권 침해와 회사의 부실로 비춰질까봐 가급적 일괄가입하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개별 가입으로 갈 경우 건설업체들의 대주단 가입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점도 건설사들에겐 부담이다.
하지만 은행연합회의 사정은 또 다르다.
은행권은 일괄가입 방식으로 대주단을 꾸리게 될 경우 무엇보다 은행권의 자금 사정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현재 건설업계에서는 약 60~70개 업체가 대주단에 가입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사정은 향후에도 딱히 나아질 것은 없는 만큼 자칫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할 수 있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은행권에서는 대주단 활동기간인 2010년 2월까지 개별적으로 대주단에 가입하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한 두 달에 끝날 것도 아니고, 대주단 역시 건설업계만 국한되지 않을 것인 만큼 대주단 형태의 업계 지원은 리스크가 적지 않다"며 "일괄가입시 60~70개 업체를 동시에 지원해야 해 가급적 피하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다"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울러 은행권은 삼성물산 등 메이저 대형건설사들도 대주단에 가입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들 대형건설사들은 중소형 건설사들의 '보호'를 위해 국토부의 대주단 가입 재촉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편 건설업계를 총괄하는 국토해양부와 대한건설협회는 일괄가입을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해양부는 18일 "가능한한 많은 건설사가 대주단에 가입해 금융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협회를 통해 100위권 이내의 건설사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협회 역시 이 달에만 세 차례나 대주단 가입 협조 공문을 회원사에 보낸 바 있다.
결국 17일 은행연합회가 대주단 가입 시기를 2010년 2월로 연장한 만큼 일괄가입은 '물 건너 간 상황'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건설업계와 은행권을 대신해 국토해양부와 금융위원회가 각각 대리전을 치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