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에 참여한 15개 국가의 무역 규모는 5조4000억 달러(세계 비중 28.7%), 국내총생산(GDP)은 26조3000억 달러(세계 비중 30%), 인구는 22억6000만 명(세계 비중 29.9%)에 달하는 초대형 FTA다. 게다가 한국의 주요 경제 블록별 수출 규모를 비교할 때 지난해 기준 대(對)RCEP 수출액은 2690억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절반에 달한다.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수출 규모가 각각 898억 달러, 126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RCEP이 앞으로 한국의 수출 시장 확대와 교역 구조 다변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은 자명하다.
며칠 전 기사 관련 회의 중 통상 이야기가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으로 인한 자유무역이 확대할 것이란 예상에 대부분 공감했다. 그러면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RCEP으로 이어졌고 일본, 일본산 자동차와 국산차도 이야깃거리가 됐다. 한·일 관계 악화로 자동차를 포함한 일본 제품에 대한 반일 감정으로 판매가 예전보다 덜 되고 있는데 한·일 관계 개선으로 반일 감정이 줄어들면 같은 가격이면 일본산 자동차 구매가 늘 것으로 예상했다. 실례로 올해 1~10월 일본산 수입차 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혼다 67.3%, 토요타 43.3%, 렉서스 39.2%, 니산 23.5% 감소했다.
영화 ‘분노의 질주 3(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에 현대차를 안 좋게 비유하는 대사가 있었다. 등장인물인 한이 주인공인 션에게 성능이 좋은 거리 레이싱용 차를 빌려주자 션이 “진심이냐?”고 묻고 이에 대해 한이 “그럼 현대차로 경기할래”라는 대사다. 기분이 나빴다. 국민 대부분은 한국산 제품이 세계에서 인정받길 원한다. 그 제품에 우리나라가, 우리나라에 내가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RCEP을 통해 우리나라는 일본과 첫 FTA를 맺었다. 이번 RCEP에선 일본과의 최초 FTA 체결이라는 점과 우리 산업의 대일본 민감성을 고려해 국익에 맞게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는 게 통상당국의 설명이다. 양국의 관세 철폐 품목수는 둘 다 83%로 동일하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일본은 무관세이지만 우리나라는 8%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공산품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세 철폐율은 각각 91.7%, 94.1%로 우리나라가 더 지킨 셈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정부로선 더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보면 아직 우리 공산품이 일본에 못 미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흔히 ‘계급장 떼고 맞짱 뜨자’란 말처럼 ‘관세 떼고 맞짱’ 뜨면 우리 공산품의 승산은 크게 높진 않은 것이다. 물론 RCEP이 다자 간 무역협정이기 때문에 우리의 경쟁력 있는 품목도 많다.
다만 RCEP도 시간이 지나면 국가별로 변화된 환경(경쟁력) 등을 고려해 개선 협약을 하게 될 것이다. 이때 관세의 보호막에서 더 자유로운, 제품 자체의 경쟁력만으로도 협상 무대에 당당히 오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