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권이 재무건전성 악화로 인해 대출을 틀어막고 있는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연내 자본확충 지원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공적자금'이냐 '공적자금에 준하는 자금'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정부의 핵심 한 관계자가 공개석상에서 "은행이 어려워 지면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도 있다"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이 발언은 그 가능성 여부를 떠나 상황이 그토록 어렵다는 말을 방증할 수도 있으며 해석여하에 따라 시장을 발칵 뒤짚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997년 11월부터 올 9월까지중 공적자금은 총 168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아직 55%인 92조6000억원만이 회수된 상태다.
공적자금 회수율도 2004년말 42.6%, 2005년말 45.3%, 2006년말 50.2%, 2007년말 53.4%로 높아지고 있지만 회수율도 큰폭으로 증가하지 않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으로 주주의 감자, 행장 교체, 종업원의 대량해고, 국회의 까다로운 동의 등이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은행 임직원과 외국인을 포함한 주주들의 반발도 거셀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에 은행 자본확충에 지원을 검토하는 내역은 결단코 공적자금이 아니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번에 지원을 검토하는 은행권 자본확충이 외환위기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는 은행이 이미 크게 부실화한 상태에서 정부가 투입해 퇴출과 인수합병을 진행한 반면 지금은 은행 부실이 심각해지기 전에 선제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들끓자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앞장서 진화에 나서고 있다. 전 위원장은 26일 MBC 라디오 출연해 "은행은 스스로 충분한 자본력을 가지고 생산적인 대출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공적자금 투입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7일 '소액보험 사업 지원금 교부'행사에 참석해 "정부의 지원은 우회적인 지원으로 은행에 직접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며 "지금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외국인들에게 국내 은행들이 더욱 어려운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금융위는 국내 은행들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상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올 9월말 현재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비율)이 바젤II기준으로 10.79%로 건실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은행들이 경기침체에 대비해 후순위채 발행과 증자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BIS비율을 11%이상으로 확충할 방침이라는 게 금융위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의 자발적 자본확충 노력 외에, 적정배당을 통한 내부유보확대, 바젤 I·II 병행산출 기간 1년 연장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은행의 자기자본 확충을 지원해 나간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현재의 입장"이라며 "선제적 자본확충 지원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 등은 국내외 주주의 입장 등을 충분히 감안해 신중히 검토될 사안"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정부가 은행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공적자금에 준하는 자본 확충 지원을 검토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후순위채 발행과 증자 등 자구 노력을 유도하면서 다양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10조 원 규모로 조성 예정인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일부 자금과 산업은행, 연기금 등을 통해 은행의 후순위채를 사들이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로 사들이는 은행채의 10% 안팎이 후순위채의 매입 규모를 확대해 보완자본 인정을 통한 은행들의 BIS 비율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하는 공사채를 한은의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대상에 넣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채권을 사들여 BIS 비율을 개선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역시 12월에 4000억 원 정도의 공사채를 발행해 자기자본 확충을 통해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더 많이 사들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