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가 통합 출범한 뒤 방대한 고객 정보를 가진 이동통신사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시민단체들이 이통사를 상대로 ‘개인정보 가명처리 중단’을 요구하면서 개인정보위 분쟁조정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참여연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서울YMCA·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이달 8일 SK텔레콤(SKT)을 상대로 개인정보 가명처리 중지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KT에는 개인정보위 분쟁조정을 신청했고, LG유플러스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개인정보침해센터를 통해 신고했다.
이는 지난해 8월 데이터 3법이 통과로 가명 정보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따른 우려에서 비롯한 것이다.
시민단체는 지난해 10월 통신 3사에 △통신사가 보유한 개인정보를 통신사 또는 제삼자의 과학적 연구, 통계, 공익 기록 보존 목적으로 가명처리 한 사실 여부 △있다면 그 대상이 무엇인지와 해당 개인정보 전부 △통신사 기지국에 기록된 개인정보 △통화를 안 하는 상황에서 통신사 기지국에서 수집한 개인정보와 본인 동의 여부를 요청했다. 동시에 △향후 개인정보 가명 처리를 정지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SKT는 “이미 가명 처리된 정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2, 제28조의7을 근거로 개인정보 열람 및 처리정지권이 제한된다”는 답변만을 보냈고, 이에 시민단체는 소송에 나섰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이번 소송에 관해 “장래 이행의 소(미래의 어떤 행동을 구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즉 현재 시점에서 피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미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라는 의미다. 동시에 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해 개인정보 열람을 요구할 권리와 개인정보 처리 정지를 요구할 권리를 행사하는 성격이다.
KT와 LG유플러스는 개인정보 보유 항목을 열거하는 데 그쳤고, 이에 시민단체는 각각 개인정보위 분쟁조정위와 KISA 개인정보침해센터를 이용해 대응에 나섰다. 이통 3사에 대한 대응이 각기 다른 데 관해 이 간사는 “개인정보 침해를 받았거나 권리 보장이 안 됐을 때 통로들이 있는데 그 통로를 활용해보자는 취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KT와의 분쟁조정 건은 다음 달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위 조정위에 넘겨지면 조정위가 손해배상 등 조정에 나선다. 다만 조정위 결정이 있어도 양측이 합의를 거부하면 조정 불성립으로 끝난다.
이 간사는 “LG유플러스 건의 경우 만족스럽지 못한 결론을 얻었는데 3월 개인정보위의 결정까지 지켜본 뒤 향후 대응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개인정보위가 만약 이번 사안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는 조정 결정을 내리면 그 영향은 만만치 않으리라고 보인다.
시민단체로서는 가명 정보 처리 중단 요구의 근거를 더 확고히 다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날 발표된 ‘이통사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 열람 기간 연장’ 건도 개인정보위의 분쟁 조정 결과였다. 개인정보위는 분쟁 조정에서 통화 내역 열람 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라고 이통사에 권고했고, 이통사들은 이를 수용했다.
이통사들은 당장 개인정보위의 결정에 따라 사업이 좌우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3법 통과로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해 활용하는 기반은 마련됐지만, 구체적인 사업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인 탓이다. 문제는 이통사들이 ‘탈 통신’을 기치로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업 등 사업을 키우는 있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를 가명처리를 전제로 한 이들 사업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업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어 당장 가시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개인정보위 결정 등이 향후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개인정보위는 올해 이통 3사를 대상으로 대리점 및 판매점에서 취급되는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는지 확인하는지 점검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개인정보보호를 소홀히 한 LG유플러스를 상대로 2160만 원의 과징금 및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최근 직제를 개편하면서 해당 업무가 조사2과에서 조사1과로 넘어왔고, 조만간 조사 계획을 수립해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