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명동]영업시간 감축ㆍ무권리 점포도 등장

입력 2021-09-01 05:00 수정 2021-09-0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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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명동의 불이 꺼졌다. 한 시민은 명동을 ‘유령도시’라고 표현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명동의 불이 꺼졌다. 한 시민은 명동을 ‘유령도시’라고 표현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 명동에서 닭갈비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맛집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명동에만 점포를 3개로 늘려 운영해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매장이었던 A씨의 점포는 한때 하루 매출 16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A씨 가게의 매출은 60만 원으로 떨어졌다. 점심 피크 시간대에도 25개 테이블 중 절반도 채워지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다.

#. 잡화점을 운영하는 B씨는 코로나19 발생 두 달 전 점포 임대 계약을 맺었다. 억대 권리금까지 주고 들어왔지만 권리금을 포기하고 문을 닫고 싶어도 계약기간이 남아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하루 매출 10만원에 불과한 B씨의 점포에는 아르바이트생 대신 조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12월 재계약에 맞춰 매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 의류 가게를 운영하는 C씨는 코로나19 이후 영업시간을 5시간 줄여 낮 12시에 문을 열고 밤 9시에 문을 닫는다. C씨는 재택근무가 늘면서 옷을 사는 주기가 길어진데다 외국인 관광객마저 사라지며 매출이 급감했다고 토로한다. 그의 점포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임대료 4000만원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적자여서 월세조차 제대로 내기 힘들다.

“요즘 누가 명동 가나요.”

명동에 언제 가봤냐는 질문을 던지면 연령대에 상관없이 돌아오는 답변이다. 명동은 내국인들이 사라진 대신 외국인 관광객들의 성지로 오랜기간 명맥을 이어왔지만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에 속절없이무너졌다. 상권을 떠받치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취를 감추자 수억원대에 달하던 명동의 권리금도 사라졌다.

외국인 대신 거리를 채워야할 내국인들은 명동을 외면했다. 홍대와 이태원이 내외국인이 동시에 북적이는 상권으로 변모하는 사이 명동은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에 취해 내국인들을 유치할만한 콘텐츠를 갖추지 못했다. 명동의 공실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명동 메인거리의 화장품 로드숍들이 모두 비어있다. (강태우 기자 burning@)
▲명동 메인거리의 화장품 로드숍들이 모두 비어있다. (강태우 기자 burning@)

◇줄어든 유동인구에 점포는 떠나고…잃어버린 2년=명동거리는 코로나19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거리에 나와 샘플과 전단지를 나눠주던 직원이 사라진지 오래다. 매장을 방문하면 영어로, 혹은 중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직원들 대신 손님이 사라진 점포를 지키는 직원은 무료함을 달래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 손님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리기 일쑤다. 매장 문이 열렸지만 직원이 온데간데 없는 점포도 있다. 문을 연 가게 앞 가판대 위 물건에는 오랫동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먼지가 수북하다.

명동에서 코로나 19 확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종은 화장품 로드숍이다. 이투데이가 전수조사한 명동 메인 거리 점포 중 화장품 로드숍 29 개중 17개가 문을 닫았다. 말 그대로 ‘한 집 건너 한 집’이 빈 상태다. 명동의 대표 업종으로 공시지가가 높은 점포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던 화장품 로드숍은 명동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명동 메인 거리에 통째로 빈 상태로 방치된 2~5층 규모 화장품점 건물이 늘면서 주변 상권의 침체도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임대 문의’를 알리는 전단이나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날린다.

휴대폰 케이스를 판매하는 상인 D씨는 “명동 상권이 살려면 메인거리에 있는 단독 건물(일명 통건물)에 점포가 들어와야 하는데 입점하는 브랜드가 없다”며 “기본 임대료가 워낙 비싸다 보니 단독건물을 임대해서 임대료 이상의 매출을 낼 만한 업종도 없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화장품 로드숍 직원 E 씨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중국 한한령(限韓令)이니 해도 지금만큼 심각한 적은 없었다”며 “메르스 때는 첫 두 달간만 손님이 없었는데, 지금은 2년 가까이 손님이 없으니 개인이 하는 가맹점은 임대료와 매출 감소에 진작 자리를 떴고 그나마 버티던 직영점들도 하나둘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명동 점포 곳곳에 임대문의가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이다솜 기자 citizen@)
▲명동 점포 곳곳에 임대문의가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이다솜 기자 citizen@)

◇영업시간은 단축· 상가권리금도 사라져=빈점포가 넘쳐나면서 명동은 인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만 잠깐 찾는 상권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매장은 거의 없다. 늦게 문을 열고 일찍 닫는 것이 상인들에게는 그나마 고정비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식당들은 점심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늦게 문을 열지만 의류점이나 화장품 매장은 대부분 점심 무렵에 매장을 오픈한다.

실제로 명동을 찾은 정오 무렵 닫힌 셔터를 여는 매장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커피전문점들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벅스 명동길점은 코로나 이전에는 밤 10시까지 운영했지만 거리두기 4단계 이후 운영 시간을 저녁 6시까지로 단축했다. 명동에 위치한 스타벅스 7개 중 가장 중심에 있는 5곳은 영업시간을 현재 6시 또는 7시로 단축한 상태다.

명동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20년째 명동에 근무 중인데 자주 가던 식당을 찾았다가 문을 닫았던 경험이 잦아 최근에는 정상 영업하는지 먼저 전화로 문의하고 방문한다”며 “일부 식당은 평일에 휴무를 하는 곳까지 있다”고 전했다.

상인들의 명동 탈출도 쉽지 않다. 계약기간까지 버텨야 보증금이라도 챙겨 나올 수 있기에 적자를 감수하고 버티거가 보증금에서 월세를 차감하며 문을 닫거나 하는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명동 L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예전엔 명동은 물건을 내놓으면 금방 팔릴 정도로 회전율이 빨랐지만, 지금은 작년에 내놓은 물건도 팔리지 않는다”라며 “메인 거리 1층 매물들의 권리금은 몇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도 호가했지만 요새는 권리금 없이 내놓은 물건들도 거래가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동에서 권리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임대료도 크게 낮아졌지만 그마저도 부담스러운 상인들이 입점을 꺼려서다. 플래그십스토어들이 선호하는 단독건물들은 입점하려는 브랜드가 없어 텅 비어있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단독건물은 코로나19 이전 월세만 최고 2억 원에 육박했다.

M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명동10길의 경우 코로나 이전에 의류, 화장품 판매점이나 식당의 경우 실평수 20평을 기준으로 권리금이 1억 원에서 최고 3억 원이었다”라며 “임차인이 높은 권리금을 지불하고 들어와 빈손으로 나가겠다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존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인테리어가 잘 된 매장이 2000~3000만원대 권리금을 제시하지만 적자가 날 것이 뻔하니 권리금까지 내고 입점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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