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태풍이 가져다준 제주 나물콩 23년 만의 변화

입력 2021-10-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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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규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부장

제주는 지리적으로 바람이 많이 불고, 토양이 화사회토에 기반을 두어 동일한 품종이라도 다른 지역보다 생산된 콩알 크기가 작아 나물콩 생산에 유리하여 우리나라 나물콩 생산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주산지가 됐다.

나물콩은 알맹이가 작은 소립종(4.0~5.6㎜)으로, 중립종(5.6~6.3㎜)에 비해 콩나물 수율이 높고 고품질로 인정받아 수매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1997년 개발된 콩나물용 ‘풍산나물콩’은 최근까지 콩 생산량이 많고, 콩나물 가공적성이 좋아 농업인과 가공업자가 오랫동안 선호한 품종이었다. 대부분의 나물콩 생산 농가는 이 품종을 재배했으며, 풀무원, CJ 등 대형 콩나물 생산업체들도 풍산나물콩의 생산공정에 맞춰 공장 설비를 세팅하는 등 풍산나물콩은 우리나라 나물콩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풍산나물콩은 밭에서 재배할 때, 바람 등 환경 영향에 의한 작물의 쓰러짐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콩 꼬투리가 땅으로부터 낮게 달려 기계 수확이 곤란한 단점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최근까지 파종은 기계로 했지만, 수확은 사람이 직접 해야만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식량과학원은 2016년 꼬투리 높이가 풍산나물콩에 비해 높고 수량도 20% 이상 많으며 쓰러짐에 강해 기계 수확이 가능한 ‘아람’이라는 나물콩 신품종을 개발했다.

품종 보급을 위해 제주 콩 재배 농가와 가공업체에 여러 차례에 걸쳐 신품종의 우수성을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풍산나물콩의 선호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다’라는 생각으로 2017년부터 4년간 제주도농업기술원과 함께 제주도에서 신품종 아람 현장 실증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그런 가운데 2019년에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링링’, ‘볼라벤’과 ‘바비’로 인해 다른 품종들은 쓰러지는 일이 많았으나 아람은 쓰러짐에 강한 특성을 보였다.

그해 10월 제주도에서 농업인들과 가공업체, 종자원 등 여러 관계기관이 자리한 가운데 기계 수확 연시를 열었을 때, 다른 품종들은 쓰러짐과 낮은 꼬투리로 기계 수확이 어려웠으나 신품종 아람은 기계 수확이 가능한 것을 직접 확인하게 돼 아람이 강한 신뢰를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뿐 아니라 가공업체의 인식 변화를 위해 2018년에서 2020년 3년에 걸쳐 11개의 크고 작은 콩나물업체와 협력해 제주 현지에서 생산된 아람을 원료로 콩나물 가공적성을 평가했고, 그 결과 아람으로 콩나물을 재배해도 풍산나물콩에 비해 수율과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람은 현재 제주 나물콩 면적의 약 25%를 차지하게 됐다. 2022년부터는 국가보급종으로 선정, 보급하게 되어 조만간 제주 지역의 콩나물콩이 신품종 아람으로 대거 교체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줄탁동시’라고 했던가.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를 위해 부스럭거릴 때 어미 닭이 함께 알을 쪼아 새 생명의 탄생을 돕는다고 한다. 신품종 아람이 23년 만에 제주도 나물콩 품종 변화를 통해 콩나물 재배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국립식량과학원 육종가의 끊임없는 노력과 지역연구기관의 지역농업에 대한 애착, 그리고, 2019년 태풍이 동시에 이 변화를 불러왔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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