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자의 정부 기능과 조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중요하므로 후보자를 상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통령 후보자의 잘못된 인식은 당선 후 5년 내내 해당 부처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때로는 고의적인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민간 연구기관을 통해 소속 부처 기능을 강조하기도 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는 특정 부처 정책과 중요성을 강조하기에는 너무 늦다. 부처 기능 개편이나 통폐합 등이 논의되면 공무원들이 사실상 업무에 손을 놓는다. 정부 업무가 형식적 집행에 그치고 실질적인 개선은 하기 어렵다.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가시권으로 들어오는 지금부터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 후보자’가 ‘대통령 당선인’이 되고 ‘당선자 비서실’이 움직이고 청와대 조직과 인력이 갖춰지는 바쁜 시간이 전개된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가장 무게를 가질 때가 이 시기이지만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법령과 규정에 없는 ‘당선자 뜻’이라는 무소불위의 칼이 춤을 추는 시기이다. 연초부터 이어지는 고위직 인사와 맞물려 ‘당선자 뜻’을 빌린 측근들의 인사 횡포도 종종 일어난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도 일어나고,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이라 웬만한 행위는 그냥 넘어간다. ‘당선자 뜻’을 직접 확인하기가 어려운 이 시기를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성공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해야 한다. 인수위 기간은 매우 중요하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가능하면 짧을수록 좋다.
김영삼 정부가 끝나가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12월 19일 이후 이듬해 2월 25일 취임하기까지 인수위 기간의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이 농산물 유통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너도나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농산물 유통 개혁안을 보고했다. 주무부서인 농림부를 제쳐두고 경제기획원, 국무총리실, 심지어 감사원에서도 농산물 유통 개혁안을 보고한다고 했다. 차기 농림부 장관 후보에 거론되는 인사들도 유통개선 자료를 요청했다. 여러 곳에서 유통개선대책 요청이 있었으나 대부분 자료는 농림부 유통정책과장이었던 필자가 만들었다. 당시 농림부 장관인 이효계 장관도 유통 개혁 대책을 보고하지 못했다. 주무 부처를 제쳐두고 타 부처가 나서서 농산물 유통 개혁안을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고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다. 통일부, 외교부 등 정부조직 개편이 논의되는 가운데 농촌 진흥청은 폐지돼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농진청 폐지에 반대한다는 주장이 전국적으로 거세지고 비판 여론이 일어나자 슬그머니 농진청 기능 개편으로 돌아섰다. 대통령 당선인의 인식, 말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에는 큰 무게가 실린다. 거기에 주변 세력이 들러붙어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게 되면 엄청난 시행착오를 야기한다. 자칫하면 대통령 5년의 힘이 초기에 다 빠져버린다.
미국 농무부(USDA)는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시절에 설립됐다. 링컨 대통령은 취임 다음 해 농무부를 설립하고 이름을 ‘국민의 부처’(people’s department)라고 했다. 농무부는 농민만이 아닌 전 국민을 위한 부처로 역할을 할 것을 강조했다. 주립대학에 무상으로 국유지를 제공해 많은 연구를 하도록 한 토지공여대학(land grant university)법등 많은 법률을 제정해 세계 최강의 미국 농업 기초를 마련했다. 미 농무부는 설립한 지 250년이 됐지만 지금도 농무부이다. 우리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부, 농수산부, 농림수산부, 농림수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부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명칭이 바뀌었다. 부처 이름을 변경한다고 해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이 달라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 순조롭게 간 이유도 정부조직에 큰 손을 대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조직과 기능이 ‘당선자’ 또는 ‘당선자 측근‘의 의도대로 개편돼서는 안 된다. 최소한에 그치고 중지를 모아 공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 정부 조직과 기능을 개편하는 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