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 삼성경제연구소(SERI)를 방문해 연구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는 이 후보의 복합적인 불만과 비현실적인 의지가 내포돼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부자(대기업)가 충분히 세금을 내지 않아 빈부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둘째, 세계 IT 분야 리더들이 시대를 앞서고 있는데, 초일류기업인 삼성과 오너 이재용은 세계적 트렌드에 뒤처져 있다는 질타다. 셋째, 본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 공감대 형성 없이 추진하지 않겠다고 한 ‘보편적 기본소득’의 긍정적 여론 형성을 위해 대기업이 일정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주문으로도 풀이된다.
우선, 우리나라 부자(대기업)들은 과연 세금을 충분히 내지 않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2020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상위 1%는 전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의 41.3%를 낸다. 상위 10%는 77.4%를 부담한다. 반면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사람은 전체의 37%에 달한다. 특히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2년 35%에서 2020년에는 45%로 뛰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소득(과세 표준)이 10억 원 이상이면 45%를 세금으로 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유층과 기업으로부터 2조 달러의 세금을 더 걷어 기후변화 등에 투자하겠다며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득의 45%를 세금으로 내려면 연간 300억 원 이상 벌어야 한다. 한국 부자의 담세 수준은 절대 낮지 않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세수 가운데 법인세는 16%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평균 10%에 그친다. 재산세도 OECD 평균이 6%인데 우리는 12%로 두 배 수준이다.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면 결국 면세 비중을 줄이고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비중은 15%로 OECD 평균(20%)보다 낮다. 하지만 전 국민이 부담하는 면세자 축소와 부가가치세 인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표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 세계적인 IT 리더들은 자기들이 세금을 더 낼 테니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자고 주장하는가.
“빌 게이츠의 주장은 AI(인공지능) 로봇으로 창출된 이익에 세금을 부과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생활과 소비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또 보편적 기본소득제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관점 역시 AI 로봇으로 일자리를 잃는 데 대한 고민을 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구상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임 전 실장의 주장대로 세계적인 IT 기업 리더들이 언급한 기본소득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선택적 소득지원이어서 보편적 기본소득과는 결이 다르다.
일론 머스크는 “물질, 서비스 생산성이 매우 높아질 거다. 자동화로 인해 모든 게 풍성해질 것이다. 또 모든 게 더 저렴해질 거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실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선별적 소득지원에 대한 전제 조건도 부자로부터 뺏는 세금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의 홍보대사로 나설 수 있을까. 2018년 기준으로 매출 5000억 원 초과 733개 대기업(전체 기업의 0.2%)이 낸 법인세가 전체 법인세의 약 60%를 차지했다. 2019년 기준 연간 소득세와 법인세는 총 160조 원 정도다. 전 국민에게 월 30만 원을 주면 매년 186조 원이 든다. 계산기 두드리는 데 누구보다 빠른 대기업들이 이 숫자를 보고 홍보대사에 나선다? 하늘이 두 쪽 나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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