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초 유럽연합(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는 유로화 탄생 10년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의 인용문은 이 보고서의 첫 문장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평가 바로 다음 해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EU는 글로벌 경제에서 위기의 진앙지가 되었다. 자국화폐를 폐기하고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EU 회원국인 유로지역의 붕괴도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그럼에도 유로는 올해 약관이 됐다. 1999년 1월 11개 회원국 간에 장부상의 화폐로 유로가 채택됐다. 과도기를 거쳐 2002년 1월 유로 동전과 지폐가 유로존에 통용됐고, 단일화폐를 채택한 국가의 화폐는 폐기됐다. 약관의 유로, 최악의 위기를 거치고 토대를 다졌지만, 아직도 만만찮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PIGS 위기로 유로존 존립 흔들
2021년 말 현재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19개 나라가 유로존에 속한다. 신규 회원국의 경우 유로존 가입조건이 맞으면 단일화폐를 채택해야 하기에 앞으로 유로존은 더 확대된다.
2010년 상반기 그리스가 유로존의 나머지 회원국 및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어 아일랜드, 포르투갈 및 스페인이 잇따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이른바 피그스·PIGS) 유로존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로존의 붕괴를 전망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가 대표적이다.
유로존의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중에 막대한 돈을 풀었고 금리를 사상 최저로 인하했다. 반면에 회원국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재정적자가 3%, 공공부문의 부채가 60%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안정성장조약(SGP, 이하 재정준칙) 때문에 심각한 경제위기의 와중에도 확대 재정 시행이 어려웠다. 긴축 위주의 경제위기 처방책을 관철시킨 독일의 정책도 이 조약에 근거했다.
확대재정 시행 발목 잡은 재정준칙
유로존 경제의 27%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대국 독일은 피그스 국가들이 게으른 베짱이이기 때문에 긴축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독일처럼 단일화폐의 경제적 이득을 얻은 경쟁력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피그스 국가 간의 구조적 불균형이 경제위기의 원인이었지만 이런 위기 진단은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과감한 위기대응책을 펼친 유럽중앙은행에 발맞춰 유로존 회원국들도 확대 재정정책을 시행했더라면 유로존 위기가 이처럼 확산되고 장기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이처럼 통화정책은 유로존의 중앙은행, 재정정책은 회원국의 고유권한이라는 제도적 결함이 유로존 위기를 잉태할 것이라고 위기 발발 전에 전망했었다. 유로존 위기로 그는 더 유명인사가 됐다. 그렇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도 유로존 출범의 근본적인 동기를 과소평가했다.
EFSF·ESM 등 금융 안전판 만들어
그리스는 2012년과 2015년 등 세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다. 3번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경제는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기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 가능성이 매우 높게 보였다. 그럼에도 그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로존의 한 회원국이라도 탈퇴한다면 유로존은 국제정치경제에서 신뢰성을 잃을 것이고 다른 회원국들의 탈퇴도 유사 상황이 닥친다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유로존의 붕괴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또다시 독일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국내의 큰 반발을 무릅쓰고 점진적으로 위기 대응책을 마련했다. 최대 경제 대국이기에 가장 큰 부담을 지었지만, 독일은 유럽금융안정기금(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 EFSF) 설립을 주도했다. EFSF는 2010년 7월 출범했고, 구제금융을 제공받은 국가를 제외한 유로존 회원국들이 경제력에 비례하여 지급보증을 해 주는 임시 기구였다. 2년이 지나 EU 회원국들은 유럽판 IMF 역할을 하는 유럽안정메커니즘(European Stability Mechanism, ESM)을 만들었다. ESM은 항구적 구제금융기구로서 총 5000억 유로의 대출 여력을 지녔다. 여기에 더해 금융기관의 감독과 청산 권한도 EU 차원으로 이양되었다. EU는 최악의 위기 앞에서 이처럼 통합의 발걸음을 더 내디뎠다. 위기가 없었더라면 이런 과감한 통합의 진전은 불가능했다.
2차대전 후 독일 포용한 프랑스
2차 세계대전 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유럽통합에서 독일은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1·2차 세계대전의 전쟁 업보를 진 독일에 대해 프랑스는 종전 후 보복이 아닌 포용정책으로 전환했다. 패전국 독일을 동등하게 대우해 주면서 제어하기 위해 프랑스가 제안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1951년 출범했다. 전쟁에 필수적인 석탄과 철강을 유럽 차원에서 공동 관리함으로써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통합의 근본 동인은 평화 유지이고 경제는 수단이다. 이후 경제 분야로 통합이 점차 확대됐다. 유로존 위기 당시 만약에 독일이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망각해 그렉시트가 발발했더라면 지금의 유로존은 없었을 것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유로존 출범의 문제점을 적확하게 지적했지만, 근본 동기인 평화 유지를 지나치게 경시했다.
재정준칙 개정은 계속 논란거리
2020년 코로나19가 유럽을 덮치자 유로존 회원국들은 올해 말까지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와중에 재정준칙이 너무 경직적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현재 개정이 논의 중이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앞장서 개혁을 요구했다. 두 사람은 물론이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도 두 수반의 개혁 요구를 지지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디지털 전환,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로 인한 국방비 증액의 필요성, 경제적 불평등 고조 등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 준칙을 바꿔야 한다는 것.
반면에 재정준칙 개혁 성패의 열쇠를 쥔 독일은 개혁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코로나19 위기 때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아 확대재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올해 상반기 EU 순회의장국으로 재정준칙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4월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선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유럽’ 정책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따라서 올해 재정준칙의 개혁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 없는 화폐’ 실험 계속될 것
어쨌든 약관이 된 유로는 최악의 위기를 극복했고 미 달러에 이어 국제무대에서 2위의 기축통화가 됐다. 2017년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유로는 20.16%를 차지했고, 2020년에는 21.24%로 소폭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 달러는 62.72%에서 59.025로 소폭 줄었다(IMF 자료).
화폐는 국가 정체성의 하나이다. 유로는 ‘국가 없는 화폐’라는 매우 보기 드문 실험이다. 20년이 넘는 동안 유로 실험실은 종종 소란스러웠고, 최악의 위기 때에는 폭발할 듯했다. 이런 위기를 지나 유로는 어엿한 성인이 됐다. 앞으로 유로의 생애에서 위기는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위기 극복의 경험이 더 큰 위기 대처에 튼튼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