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자들이 특정 쟁점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것이 본인의 승리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중의 입맛에 맞는 지점을 공략하는 포퓰리즘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다수가 관심을 가지는 쟁점을 선택하고 그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것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이런 전략적 쟁점의 선택과 집중이 가져오는 악영향은 상상 그 이상이다.
후보자들은 쟁점을 선택함에 있어 자세한 정책 방향과 실행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여성가족부(여가부) 폐지’, ‘기본소득 지급’ 등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극단적이고 선언적(宣言的)인 정책 구호를 던지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언적 구호는 선거에 대한 대중의 토론을 찬반 논쟁에 매몰되게 한다. 실제로 한 대선 후보가 ‘여가부 폐지’를 외친 후 그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왔고, 그에 따르면 유지와 폐지 의견이 4대 5 정도로 대립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유지 후 개편’의 선택지가 추가된 설문의 경우 약 44%의 응답자가 유지 후 개편을 선택해 유지(16%)나 폐지(30%)의 선택을 크게 웃돌았다는 점이다. 즉, 대중의 의견이 이미 양극화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전략적 쟁점 선택이 찬반 논쟁을 일으켜 대중의 의견을 양극화의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는 대중을 두 집단으로 나누는 것을 넘어, 집단 내 동질성의 압박으로 이어진다. 정당의 표면적 정체성이 찬반 논쟁에 매몰되어 고착되고, 그것에 반하는 개인은 주류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특정 정당 지지자라면 여가부 유지, 확대재정 정책, 보편적 복지에 동의해야 하고, 반대 정당의 지지자들은 여가부 폐지, 긴축재정 정책, 선별적 복지에 동의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 예이다. 이러한 압박은 동조(conformity)심리를 자극하여 장기적으로 정당 정체성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정체성 양극화의 정도가 심화할수록 그리고 정당 내 정체성의 동질성 압박이 강해질수록, 그 극단적 정체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개인은 현실 정치 안에서 마음 둘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정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면, 대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무관심한 대중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치인을 낳기 마련이다.
필자는 지난해 ‘페미 논쟁을 부추기는 분리와 군림 전략’(2021년 8월 21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었다. 현재 대통령 후보들이 이 ‘분리와 군림’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략적 쟁점 선택을 위해 선언적 구호를 던져 놓고 대중을 두 집단으로 분리시킨 후 자신들이 그 위에서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단순하거나 어리석지 않다. 충분히 비판적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여가부 폐지와 여성 혐오를 동일시하려는 시도, 여성주의와 남성 혐오를 동일시하려는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가부 유지를 원하지만 긴축재정 정책에 찬성할 수도 있고, 보편적 복지에 공감하지만 기본소득 지급에 반대할 수도 있다는 것에 당당해져야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올 즈음에는 대통령 선거의 승리자가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자가 민주주의의 꽃을 가져다 줄 것인지, 아니면 양극화된 사회와 대중의 차가운 무관심 위에서 군림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찬반 논쟁에 매몰되거나 양극화에 동조되기를 거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여가부 폐지이든 기본소득 지급이든, 찬성과 반대를 따지기보다, 정책의 필요성이나 방향성, 후속 조치와 대응 방안에 대한 고민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