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정보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산유국이며, 하루에 약 11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다. 이 생산량의 절반은 내수에 사용하며, 나머지 약 500만~600만 배럴의 물량을 수출한다. 수출량의 절반은 유럽으로 가고, 42%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로 보내진다. 러시아는 2021년 석유 수출로 약 11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으며, 석유와 가스 부문에서 재정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조달한다.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은 러시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작년 미국은 러시아에서 약 2억4500만 배럴의 석유와 석유제품을 수입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수치이고, 비중으로는 8% 수준이다.
미국은 러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석유를 수입하며, 천연가스 수입은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수입 금지를 발표했을 때 미국 정유사들은 이미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줄이고 있었고, 러시아산 석유를 피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사소한 불편에 불과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구매 중단은 러시아의 막대한 석유 수익에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 효과적인 제재 수단이 되려면 유럽 국가들이 이번 조치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석유 및 가스 생산국인 미국과 달리 유럽은 가스의 90%와 석유제품의 97%를 수입에 의존한다. 러시아는 유럽 가스의 40%와 석유의 25%를 공급한다. 산유국인 영국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데 동참했지만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다른 G7 국가를 참여시키는 것은 어려운 외교적 과제다.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즉시 금지하고, 영국이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후 유가는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발표 당일 국제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7% 올라 배럴당 132달러를 기록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가는 30% 이상 급등하였는데, 이는 가장 빠른 유가 상승 기록 중 하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할인된 러시아산 석유가 시장에서 구매자를 찾지 못하는 동안 글로벌 석유 공급에 대규모 혼란이 발생하고 유가는 급등하고 있다. 금수 조치가 발표되기 직전 골드만삭스는 올해 브렌트유 전망치를 98달러에서 135달러로 상향 조정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에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급등한 연료 가격은 미국 가정에 피해를 주기 시작했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에게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공급망 회복을 위한 증산 움직임은 탄소중립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유가와 증산이 당분간 지속된다면,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제동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를 압박하고 고립시키는 대가로 석유와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의 석유 수출을 억제할수록 이미 치솟은 유가와 에너지 가격은 더욱 높아져 소비자, 기업, 금융시장 및 세계 경제를 더욱 압박할 수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미국 등 각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비축유에서 3000만 배럴의 석유를 방출하는 것을 승인했다. 다른 산유국과의 공조가 지연될 경우 추가적인 방출 규모는 9000만 배럴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석유는 비교적 대체 가능한 글로벌 상품이기 때문에 대체 생산자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럽에 필요한 석유 중 일부는 노르웨이, 앙골라,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국가가 대체 공급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중동 국가들에 원유 선적에 대한 목적지 제한을 완화하도록 요청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이다. 이런 방안들은 석유 공급에 대한 세계적인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며, 가격 인상 압력을 축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때, 페르시아만의 미국 동맹국들은 7000만 배럴 이상의 대규모 비축유를 준비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