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시되고 있는 일부 차량의 실내 형태는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커다란 태블릿이 장착되어 있는 센터페시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설치되고 수많은 버튼으로 이루어진 오디오 및 공조기 시스템이 사라져 버린 깔끔 그 자체가 되고 있습니다. 여태껏 A사의 제품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현대 디자인의 기본으로 받아들여진 설리반의 명제를 T사 차량은 더욱 발전시켜 미니멀리즘의 총아라는 느낌과 이러한 형태를 무척 좋아할 소비자들, 특히 요즘의 젊은 계층들이 매우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대형 모니터에 의존하여 작업하는 나로서는 모든 차량이 이렇게 작은 모니터만 설치하여 구동하도록 한다면, 화면 내 작은 정보들이 잘 보이지 않아 작동시키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이와 반면 일부 자동차들은 장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기능의 효율성을 더욱 높이고 있는데, 도시에서도 20세기 중후반부터 지나친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전통과 장식을 중히 여기는 후기 모더니즘 또는 신도시주의 이론들이 등장하여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바닥에 주철로 만든 뚜껑 같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요? 도시 하부에는 다양한 도시기반시설이 매설되어 있고 이들을 유지 및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맨홀 뚜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보면 특히 일본의 경우 아름답고 멋진 예술적 맨홀 뚜껑이 많아 그 자체가 도시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미국처럼 지역적 특성과 이미지를 담은 뚜껑을 통해 이곳이 어느 도시인지 알리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 한 지자체에서 공공시설물 표준디자인을 개발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양한 시설물 중 하나가 맨홀 뚜껑이었습니다. 작업 디자이너는 담당 공무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그 작은 뚜껑에 지자체 이름, 숫자 및 용도별 색깔을 넣은 결과를 제시하였는데, 한 전문 디자이너가 단순화와 미니멀리즘이 세계적 추세인데 실무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반영하게 되면 지나치게 장식적인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 트렌드에도 부합되지 않으니 예술작품 그 자체로 만들라고 지속해서 주장하였습니다. 한편으론 그분 주장도 이해되었지만, 도시를 관리하는 측면에선 추가적 기능 요구가 비록 장식적인 요소가 되더라도 이를 반영한 제품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도시 지하에 매설된 시설들은 매우 다양해서 그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변을 파헤치다가 커다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최근 이런 시설물들을 디지털화하거나 디지털트윈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도시에서 굴착행위가 이루어질 경우 빨간색, 파란색, 녹색 등 각각의 페인트 색깔로 주변에 시설물의 유형, 위치, 깊이 등을 표시 후 작업하고 있습니다. 맨홀 가장자리에 색깔을 띤 원을 만들어주기를 요구한 것은 지하 시설물의 유형 파악을 위한 것, 불빛 반사 기능을 요구한 것은 야간에 식별을 위한 것, 숫자를 요구한 것은 위치 파악을 위한 것, 즉 도시관리를 쉽게 하려고 다기능을 반영한 맨홀 뚜껑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인데, 지나치게 순기능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과 미적 기능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와 관련된 디자인은 예술과 다른데, 디자인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의 일상적 필요와 미래 전망을 참고해볼 때 실상황에서 사람들의 불만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즉,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을 때 디자인이 나타나게 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용에 편리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미니멀리즘은 빼는 디자인을 실천하고 순기능에 방해되는 형태들을 무시하는 측면이 매우 강한데, 한편으로는 비용 절약과 생산성이라는 가치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최근 소비자의 취향과 생활방식이 다양화되면서 도시디자인도 다변화를 요구받는 추세입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모더니즘적 명제는 지속될 것으로도 보이지만,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역할은 단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서 기능과 그 이상의 것에 관한 결정을 직접 내리는 역할도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형태와 기능 중 한 가지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나머지는 부속화시키기보다는 양자가 서로 조화된 도시가 진정으로 도시민을 위한 공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