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는 물론 공공기관 출입은 꽤 엄격합니다. 민원 창구가 아니고서야 단계적인 보안 절차를 거쳐야 출입할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공공의 업무와 국가기관의 보안을 위한 일입니다. 누구도 이를 거부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때 신분증만 제시하면 쉽게 출입증을 받던 때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옛말입니다. 대부분 기관은 면담 담당자가 직접 출입구까지 내려와서 인솔해야 방문할 수 있습니다. 방문자가 아닌, 정부 청사에 매일 출근하는 공무원도 출입이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출입증을 접촉하고 얼굴 인식 프로그램까지 통과해야 ‘차단 게이트’가 열립니다. 일반인이 공무원의 출입증을 몰래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시스템이지요.
시행 초기에는 적잖은 오류도 있었습니다. 정부 과천청사를 출입하던 시절, 과기정통부의 한 여성 주무관은 “머리 스타일을 바꿨더니 안면 인식 프로그램이 계속 나를 못 알아본다”며 푸념하기도 했지요. 강화된 보안 절차는 시행 5년여를 넘어서자 이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처럼 출입절차가 까다로워진 이유도 있습니다. 2016년 이른바 ‘공시생 사건’이 발단이었지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 숨어 들어가 시험 성적을 조작한 사건이었습니다.
체력단련실에서 공무원의 출입증을 몰래 훔친 피의자는 청사 안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시험 성적을 조작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관련 공무원 여럿이 직을 내려놓거나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강화된 보안 절차는 국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의원회관은 엄격한 출입통제가 필수입니다. 각 당 의원이 주최하는 세미나와 다양한 행사들이 자주 열리다 보니 일반인의 출입이 잦은 곳이거든요.
최근 한 공공기관의 고위 임원이 이 의원회관 로비에서 일반인들에게 호된 질타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수십 명의 중장년이 차례로 줄을 서서 출입증 발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말끔한 정장 차림의 몇몇 무리가 대기 줄을 무시한 채 발급 창구로 직행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들은 국회 직원에게 곧바로 출입증을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이제 막 출입증을 받으려는 대기자의 것을 가로채려다 국회 직원이 제지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수십 명의 대기자를 제치고 출입증을 가져가겠다고 나섰던 이들은 정장 재킷에 ‘ex’라는 배지를 달고 있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임직원이었던 것이지요.
곧바로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대기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도로공사 임직원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 여럿도 현장에서 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기자들이 이 도로공사 임원에게 소속과 이름을 물었습니다. 이 장본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고생하신다”라는 말로 얼버무렸습니다. 수행 직원은 “우리는 미리 이야기해 놓은 사람들”이라고 변명했습니다.
나중에 국회 국토교통위 관계자를 통해 확인해 보니 이날 새치기의 장본인은 한국도로공사의 임원인 A 씨였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임원이 국회에서 얼마나 다급한 일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설령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해도, 그들에게 수십 명의 대기 줄을 가로지를 권리는 없습니다.
이제 막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됐고 곧 청문회도 열립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산하기관들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정치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지요.
대한민국은 이제 OECD 단순 가입을 넘어 엄연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 주변에 자리 잡은, 작은 것 하나라도 간과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선진화된 시민의식도 힘을 보탠 덕입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정권 레임덕 기간, 주요 기관의 ‘기강해이’가 특히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번 기회에 도로공사는 또 얼마나 많은 ‘편취’와 ‘새치기’를 반복했는지 꼼꼼하게 뒤져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