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초단기 시나리오에 따른 단기 경영체제로 들어간 가운데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과 신용경색이 풀리기 전까지는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8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그룹 등 대기업들은 단기 시나리오에 따른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변동성이 확대돼 경영상황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 단기적인 시나리오 경영을 하고 있다"며 "투자를 한다면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되고 매출 목표가 나와야 하는데 상당히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연간 투자 계획 자체를 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SK그룹도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방침에 따라 단기 경영계획을 짜서 집행하고 있고, 금호와 한화그룹 역시 올해 투자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통신이나 에너지 사업 모두 수급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섣불리 투자할 수 없다"며 "중국의 수요가 어느정도 나올지 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무엇보다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설 수 없는 이유로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을 꼽았다.
재계 관계자는 "무리해서 설비투자를 잔뜩 했다가 운영자금이 부족해져 문을 닫게 되면 누가 책임을 지겠냐"면서 "매출감소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다 경영환경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또 신용경색으로 자금 조달 창구가 얼어붙어 돈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투자에 나설 수 없는 이유로 제시했다.
더구나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상장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71조 원에 이르지만 이 중 51조 원은 1년 내에 갚아야 할 단기자금이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상위 7~8개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며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은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데다, 은행들도 대출을 꺼려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수요가 살아나기 이전에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을 보강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뿐 아니라 신규 대출과 신규 회사채 발행, 수출입금융 활성화 등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며 "회사채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채권시장안정펀드 규모를 더 키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