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증권사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 구축 난관
대형사 대표진과 여의도 조찬 모임서 지원 공감대 조성
사모펀드 책임론·ELS 마진콜 사태 등 어려움 겪기도
금투세·ATS설립·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성과 꼽아
이달 말로 금융투자협회장직을 내려놓는 나재철<사진> 금투협회장은 지난 3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 회장은 전임 회장의 유고 이후 업무를 시작했던 만큼 업계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사모펀드 사태, ELS 마진콜 사태 등 난관을 겪으면서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질책도 이어졌다.
나 회장은 올해 임기 막바지에 또 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레고랜드 사태’를 시작으로 시장에 돈줄이 마르기 시작한 것이다.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형 증권사의 위기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의 압박도 거세졌다. 대형 증권사들의 책임론이 대두됐다. 나 회장은 대형 증권사들로부터 유동성 지원에 대한 공감대를 조성해야 했다.
나 회장은 당시를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지원을 해야 했다”고 떠올렸다. 중소형사 유동성 지원을 논의하는 첫 회의 때 증권사 대표는 단 4명뿐이었다. 그 외 회사는 대표가 아닌 임원들만 참석했다. 그중에 한 임원은 “이사회도 통과해야 해서 힘들다. 팔을 비틀어서 하자는 거다”라는 볼멘소리도 내뱉었다.
나 회장은 대형 증권사들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회의에 대표만 참석하길 당부했다. 그리고 여의도 모처에서 증권사 대표들과 ‘죽’ 한 그릇을 먹으며 조찬 자리를 가졌다. 나 회장은 “아침에 뜨거운 죽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중소형사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대형 증권사 대표들도 질질 끌지 말고 지원하자고 공감대를 모았다”고 말했다.
금투협회는 이달에 열린 ‘자랑스러운 협회인’에 ‘유동화증권매입프로그램’ 구축 업무를 맡은 증권지원1부를 선정했다. 자본시장혁신TF와 부동산신탁지원부도 상을 받았다.
내년 증권업계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소형사를 위주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나 회장은 업계가 위기일 때 협회는 발 빠르게 현황을 파악하고 금융당국에 건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려움에 놓인 증권사들이 정작 금융당국 앞에서 정작 어렵다는 얘기를 잘 못 꺼내는 업계 성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금투협회는 개별 증권사를 찾아 일대일 면담으로 어려움을 파악해 금융당국에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나 회장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 시장의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정부에서 시장 조치안을 내놓기 전이었다. A등급 회사채는 거의 마비고, AA 회사채는 발행도 안 됐을 때 직접 나선 것이다.
나 회장은 임기를 마치면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대체거래소(ATS) 기반 마련, 유예됐지만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증권거래세 인하 분위기 조성 등을 성과로 꼽았다. 협회 내에서는 나 회장을 두고 ‘덕장(德將)’이란 평이 나온다. 나 회장은 “3년 농사를 잘 마쳐서 홀가분하다. 추진 과제들이 잘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력 없이는 운도 없다. 나 회장은 그 운을 만들어 냈다.
나 회장은 퇴임 이후 금투협회 고문으로 재직할 가능성이 크다. 금투협회장은 퇴임 이후 예우 차원으로 고문직을 1년간 맡곤 했다. 직전 회장의 유고로 관례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나 회장의 경우 고문직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회장은 오는 23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제6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