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을 깨고 지난달 말 7개 한국산 게임에 판호(版號·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를 발급했다. 이처럼 한국 게임에 무더기로 판호를 내준 것은 2017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발표 이후 중국이 보복에 들어간 이후 처음이다.
외자판호를 발급받은 국내 게임은 넥슨 ‘메이플스토리M’, 넷마블 ‘A3’·‘제2의 나라’·‘샵타이탄’, 스마일 게이트 ‘로스트아크’·‘에픽세븐’, 엔픽셀 ‘그랑사가’ 등 7종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상적으로 판호 개방이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올해 2분기에도 판호가 또 나올지 여부에 따라 전체 윤곽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거대 중국 게임시장 열린다…실적반등 기대감 = 중국 정부는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전에 매년 10여 건의 국내 게임에 대해 중국 진출을 허가했다. 그러나 ‘한한령’과 함께 2017년 2월 1건, 2020년 12월 1건, 2021년 6월 1건 등 발급 건수가 크게 줄었다. 지난해 6월부터 중국 정부가 게임에 대한 규제와 폐쇄 정책을 강화한 점도 영향을 줬다.
외산 게임, 특히 국내 게임에 대한 대규모 판호 발급이 재개되면서 국내 게임업계도 실적 반등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국내 게임의 주요 수출국은 중국으로 전체 수출의 34.1%를 차지한다. 국내 게임 산업 수출액이 9조9254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 시장에서 국내 게임사가 벌어들이는 금액은 3조3845억 원에 달한다.
판호 발급이 중단되기 전 중국에 진출한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넥슨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현지에서 상위권에 자리매김하며 확실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판호 발급 기조가 완화됐다고, 국내 게임사들의 중국 진출 성공이 확실시 되는 것은 아니다. 펄어비스 ‘검은사막 모바일’의 경우 중국 서비스 시작했지만, 현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강석오 신한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지금부터는 중국의 사상과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콘텐츠, 너무 과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BM) 등을 고려해 중국 진출에 대한 준비와 출시 가능성을 고려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짚었다.
◇기대감 높아졌지만…아직 신중한 게임업계 = 판호 발급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게임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통해 추가로 중국 시장 진출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이용자들을 모았던 게임들이 대거 판호 발급을 기다리고 있어 중국 현지 진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 IP를 통해 이미 인지도가 높은 위메이드의 ‘미르’ 시리즈나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미 대만 시장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카카오게임즈의 ‘오딘:발할라라이징’, 중국 판호를 받은 ‘검은사막 모바일’의 PC버전인 ‘검은사막’도 판호 발급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2017년 이후 국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중국에선 판호를 발급받지 못한 게임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적용한 게임에 판호를 발급했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며 “국내 시장에서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은 MMORPG 장르의 게임도 판호를 받으며 앞으로 중국 시장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더기로 판호를 받았다고 해서 중국 진출 길이 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한국 성향이 짙은 게임을 가지고 현지 정서에 맞게 최적화 작업을 거치는 것도 상당시간 소요되는데다, 중국 정부가 사행성이 강한 게임에 대해서는 판호 발급을 취소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과거 한국 게임들이 판호 발급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중국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판호 발급은 중국 진출이 가능해졌다는 자체만으로 의미있을 뿐, 중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 섣부른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조성준, 정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