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첫 자유총선에 합의
통일 위한 서독과의 대화 촉구했지만
섣부른 통일 경계했던 인물이기도
모드로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나흘 뒤인 1989년 11월 13일 동독 총리로 취임해 통일 6개월 전인 1990년 4월 12일까지 총리를 지냈다. 격동의 시기 동독을 이끌었던 그는 공산주의 반대파와 권력을 나누는 데 동의하며 동독 역사상 첫 자유 총선을 이끌었고, 통일을 위한 서독과의 대화를 촉구한 인물이다.
좌파당도 “독일 통일을 확립하는 전체적인 평화적 과정은 그의 특별한 업적이자, 정치적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며 모드로를 추모했다.
개혁파 공산주의자로 평가받는 모드로는 1973년부터 동독 집권 사회주의통일당(SDE)에 몸담아 드레스덴 서기장으로 재직하며 명성을 쌓았다. 모드로는 1990년 2월 SDE의 후신인 민주사회당(PDS)의 자유 총선 선거를 이끌기도 했으나, 3월 18일 선거에서 16.4%의 지지를 얻어 3위 정당에 그쳤다. PDS는 현재 좌파당에 흡수됐다.
섣부른 통일을 반대하기도 했던 모드로는 통일보다 동독의 체제변화를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성급한 통일이 동독에 손해를 입힐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는 그가 짧은 재임 기간에도 ‘신탁관리청’ 신설을 주도해 국유 재산 사유화 및 시장경제로의 전환 작업을 주도한 것과 무관치 않다.
통일 이후 모드로는 동독 공산주의 세력이 주축이 된 좌파당에서 연방하원의원으로 활약했고,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모드로는 최근까지 좌파당의 원로위원회에서 고문으로 있었다.
모드로는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통일 후유증과 관련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옛 동독 시민에게 지속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은 모드로는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은 물론 주독 북한대사관 주요 행사에도 빠짐없이 초청을 받았다. 1989년에는 북한을 찾아 김일성 주석도 만났다.
모드로는 1928년 1월 27일 지금은 폴란드에 속한 폴리스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5년 5월 소련군에 의해 전쟁 포로로 잡혀간 뒤 석방된 후 기계공으로 일하다 동독의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