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탐욕에 의한 가격 상승 주장 제기돼
“수급 불균형 속 정당한 행위” 반박
근로자 임금 인상이 원인 주장도 틀렸다는 지적
실질 임금 여전히 낮아
그중 하나는 탐욕(Gree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결합한 ‘그리드플레이션’이다. 그리드플레이션은 탐욕에 찬 기업들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킨다는 의미가 담긴 용어다. 사실상 물가 상승의 책임이 기업들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임금인플레이션(Wage Push Inflation)’으로 임금이 너무 과도하게 올라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인건비가 전가돼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의미다.
즉 ‘그리드인플레이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기업을 지목하는 반면, ‘임금인플레이션’은 개인의 인건비 인상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론 모두 물가 상승 원인의 단면만 본 잘못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리드플레이션이 물가 상승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정책적 판단 오류와 우크라이나 전쟁, 팬데믹(전염병 대유행)과 같은 외부 원인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기업들의 가격 인상만을 물가 상승 원인으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대표적인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정부 정책 실수를 꼽았다. 팬데믹 기간인 2020~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재난지원금 성격으로 대다수 미국인에게 세 차례에 걸쳐 현금을 지급했다. 피터 G. 피터슨 재단은 미국 전체 가구의 85%가 혜택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직접 지원금에 투입된 예산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이었다.
저금리 기조에서 현금이 생긴 시민들은 소비하기 시작했고, 이는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수요 급증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생긴 공급난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기업들의 이윤은 급증했다. 결국 정부 정책으로 촉발된 수요 급증 기업들의 이윤을 불려준 꼴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는 기업의 행위는 정당하고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격 메커니즘이 공급과 수요를 맞물리도록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급 부족을 악용하는 사례를 간과할 수 없지만 이러한 흐름이 주류라고 볼 수는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업의 탐욕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신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과도한 부양책의 오류를 계속 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금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인플레이션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책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이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잉글랜드중앙은행(BOE) 총재는 근로자들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전에 “생각하고 반성하라”고 언급하며 “임금 인상을 자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금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3~5월 영국의 임금 상승률은 평균 7.3%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7%)를 웃돌았다. 특히 민간 부문 급여 상승률은 7.7%를 기록해 공공 부문(5.8%)을 앞질렀다.
하지만 임금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춘 물가대응책은 여러모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적했다. 영국에서 임금이 지속해서 오르고 물가상승률은 반대로 지난달에 7.9%로 1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임금 상승 폭은 물가 상승 폭을 앞지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데에 정책 초점이 맞춰지게 될 경우 경기 침체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FT는 “공급 측면을 활성화하기 위한 의미 있는 조치로 금리 인상과 임금인상 억제의 부작용을 보완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필요에 맞게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기술혁신을 수용해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만드는 최선의 경로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러한 접근 방식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줄이는 것은 물론 지속 가능한 생산성 성장에 대한 전망을 높이고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확장할 수 있다고 FT는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