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일이 가끔 생긴다. 나는 대학원 이후 과정에서 가족치료를 전공했고, 부족하지만 임상 경험을 꽤 쌓았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내밀한 (가족) 문제가 생겼을 때, 문득 나에게 연락해서 ‘상담’을 받겠다고 청한다. 윤리적인 기준 때문에, 지인을 ‘본격적으로’ 상담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시원하게 들어드려야겠다고 마음 먹고 만났다.
한데,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음, 사실 전화 드렸을 때 고민하던 문제가 이미 풀렸어요. 오늘은 그냥 얼굴 뵈려고 왔어요.” 양가감정이 슬쩍 든다.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다니 다행이지만, 어떤 일인지 궁금했는데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조금 답답하다.
그래서 용기내 여쭈어 봤다. 배우자와 갈등한 문제였단다. 대화를 진솔하게 나누고 푸셨단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 봤다. ‘왜, 어째서 좋아지셨을까?’ 처음 상담을 청했을 때 가장 깊게 해당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셨겠지? 본인이 떠올릴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생각하셨겠지. 그런데 상담까지 청했으니 자신을 좀 더 돌아보고 반성도 하셨겠지?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집중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셨다는 말.
‘상담 전 변화’라는 전문 용어가 있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로 최종 결심하고 상담자에게 연락해서 약속까지 잡았는데, ‘신기하게도’ 실제로 상담을 받기 전에 상황이 개선되거나 문제가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현상이 매우 많이 생기기 때문에, ‘상담 약속을 정한 이후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나요?’ 라고 묻는 질문 테크닉도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다 알 수 없는 놀라운 힘이 있다. 위기가 다가왔을 때, 감지해서 그 위기가 실제적 위협으로 작동하기 전에 미리 잠재우는 힘.
어쩌면, 문제는 현실 속 모순을 의식하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태도에서 생기는 듯하다. 우리가 문제를 문제라고 실제로 인식하면, 그래서 진지하게 긴장하고 대처한다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