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7조 팔고, 해외서 23조 사고…역대급 유동성에도 한국 증시 ‘찬밥’

입력 2024-06-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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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직장인 A 씨는 최근 증권 계좌에 넣었던 돈 중 70%를 빼 은행 예·적금으로 옮겼다. 리스크를 감내하며 수익률에서 별 차이 없는 국내 증시에 투자해 마음을 졸이느니 안전한 예적금에 파킹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올해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3.35%, 은행연합회에서 집계한 국내 19개 은행 35개 정기예금(1년 만기) 상품 평균 금리는 3.16%다. A 씨는 나머지 자금 30%도 해외증시로 옮길까 고민 중이다.

역대급 유동성에도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떠나고 있다.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미국 등 해외증시로 자금을 옮겼고, 국내 예·적금 등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코스피보다 예적금이 낫다…차라리 해외로=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광의통화(M2)는 11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M2는 시중에 돈이 얼마나 풀려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통용된다. 4월 M2는 전 월 대비 16조7000억 원 증가한 4013조 원을 기록했다. 4000조 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늘어난 유동성이 자국 증시 투자로 이어지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정론이다. 자국 증시 투자는 국내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고, 국내 기업 성장은 주주 환원 등을 통해 다시 투자자에게 이득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자금이 유입되므로 기업은 자금 조달력을 보충할 수도 있다. 또한, 자국민의 투자는 시장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국인의 투자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유동성은 국내 증시로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 늘어난 유동성은 국내 증시가 아닌 안전자산으로 편입됐다. 올 4월 정기 예·적금 잔액은 10조2000억 원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한국은행이 발간한 최근 5년간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살펴본 결과, 2023년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예금 비율은 약 5%포인트(p) 증가했지만 주식 비율은 약 5%p 감소했다. 주식 투자 비율은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1년, 2022년 늘어났다가 2023년 다시 줄어들었다.

남은 투자자도 한국 증시를 외면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4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유 금액은 842억 달러(약 116조1539억 원)로, 올해 초(673억 달러·약 93조4797억 원)보다 23조 원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투자자는 국내 증시에서 7조 원가량 팔아치웠다.

S&P500과 나스닥이 모두 17일(현지시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고공행진하며 투자 매력도를 끌어올려 국내 투자자들을 흡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금리 기대와 경제 낙관론, 인공지능(AI) 랠리 기대가 더해지면서 주가지수를 떠받쳤다. 골드만삭스는 S&P500의 연말 목표를 2월 예측했던 5200에서 5600으로 상향 조정했다. 해외 투자 매력도는 더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금융투자소득세와 같은 정부 규제가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기업 지배 구조 문제로 인해 주주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국내 증시의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이유로 지목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개인투자자들은 고금리 상황에서 향후 금리하락과 국내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면서 채권, 해외주식 등으로 자금운용 수단을 다변화했다”며 “2021년 하반기 이후 주가상승이 미미한 국내주식보다 더 큰 상승률을 보이는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국내 증시 이탈이 가속화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 “코스피 3000 간다” 외치지만=증권가는 하반기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길 수 있다고 전망하며 국내 증시 투자 매력도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예측한 올해 코스피 밴드 상한 컨센서스는 2950이다.

삼성증권은 하반기 코스피 예상 밴드를 2650∼3150선으로 제시했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4년 하반기 한국 주식시장 전망과 전략’ 보고서를 통해 “올해는 수년간 있었던 이익 하향 조정 압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하반기 중 코스피 2900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이사는 최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하반기 변곡점은 일평균 수출금액이 피크아웃하는 3분기로 예상된다”며 올해 3분기 코스피가 3100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코스피 밴드를 2300~2750에서 2500~3000으로 추가 상향 조정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 회복에 따른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과 시장금리 조정에 의한 자본비용(COE) 하락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 대선, 2분기 이후 수출 모멘텀 둔화, 인공지능(AI) 피크아웃 경계감 등은 지수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하반기 증시는 미 대선이라는 가장 크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불확실성을 앞두고 있어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수출이 개선되고는 있으나 회복세는 기저효과가 큰 반도체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지수가 박스권, 종목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존 전망(하반기 코스피 밴드 2550~2850)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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