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HBM, 그리고 유언비어 [마감 후]

입력 2024-08-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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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같은 패턴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열리기 1시간 전쯤 로이터통신에서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퀄(품질 검증) 테스트 통과 여부를 담은 기사가 보도된다. 삼성전자 주가는 출렁인다. 삼성전자는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형 국민주다. 민감한 정보가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시장에 확산되면 투자자들은 큰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앞서 7일 로이터는 삼성전자의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제품인 HBM3E 8단이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확인 불가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다만 내부 관계자들은 사실상 '오보'라는 반응이다. 삼성전자 HBM3E는 아직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아직 공급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로이터의 오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5월 로이터가 삼성전자 HBM3E 8단과 12단 제품이 발열 및 전력 소비 문제로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해 투자자들이 동요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들과 HBM 공급을 위한 테스트를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3.07% 하락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삼성전자 주식을 각각 5660억 원, 3000억 원 순매도하면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지난달에도 로이터는 국내 주식 시장이 열리기 전 삼성전자의 HBM3E가 아직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도하며 주가를 흔들었다.

퀄 테스트는 진행 과정에서 보완 작업 등을 거치며 최종 공급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퀄 테스트를 마치 중계방송 하듯 "통과했다",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하는 건 사실과 다른 얘기다.

올림픽 수영 200m 경기를 예로 들면, 50m와 100m, 150m 통과 지점에서 특정 선수에 대해 "올림픽 신기록에 미치지 못했다" 혹은 "올림픽 신기록을 경신했다"고 보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m 지점을 통과했을 때가 최종 기록인 데도 말이다.

삼성전자 안팎은 물론, 투자자들은 이 같은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주가를 움직이려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도 쏟아진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둘러싼 오보는 로이터뿐만 아니다. 국내 일부 매체에서도 삼성전자 HBM 퀄테스트 통과 여부와 웨이퍼 불량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기사화해 삼성 주가가 크게 출렁인 바 있다.

이런 소동의 근본적인 원인은 메모리 반도체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가 HBM이란 새로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핵심 메모리로 떠오른 HBM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메모리 호황기를 맞아 삼성전자가 실적 개선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해야 한다.

물론 엔비디아의 퀄테스트 통과는 시간 문제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전 세계에서 HBM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3개사뿐이다. 엔비디아로서도 가격 협상력과 수급 등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의 HBM 공급이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각종 유언비어의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하루빨리 반도체 초격차 지위를 회복하는 게 답이다. 그 시작은 HBM 최신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이다. 이후 HBM의 뒤를 잇는 새로운 반도체 패러다임을 이끌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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