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 피해 최소화하겠다던 금융당국
정작 대출난에 허덕이며 돈줄 끊긴 실수요자 아우성
#십 수년간 전세를 전전하다 드디어 ‘내 집 마련’에 나서나 싶었다. 꿈에 부푼 것도 잠시 잔금 대출을 앞두고 꽉 막힌 대출에 망연자실했다. 1년 전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울때 해도 고려하지 않던 변수였다.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야된다는 생각에 대출 ‘오픈런’까지 나섰다. 연차를 쓰고 은행 지점 수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온라인을 통해 대출 모집인도 수 차례 만났다. 당초 생각한 만큼 대출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예상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높은 금리로 빌려야 했다. 대출을 받아 은행을 나오며 “적선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자조감이 들었다.
대출 시장에 찾아온 때 이른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한 지인의 하소연이다. 그나마 지인은 고리(高利)를 부담했지만 돈은 빌릴 수 있었다. 꽉 막힌 대출문에 발길을 돌렸다는 금융소비자들의 사연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조이기에 ‘대출 절벽’이 발생하며 벌어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 은행들은 비대면 대출 문을 잠그기 시작했고 제2금융권도 ‘풍선효과’를 우려한 금융당국의 압박에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가계대출을 압박하면서 ‘실수요자’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던 금융당국의 장담은 무색해졌다.
앞서 언급한 지인 역시 서울 강남권 등 일명 상급지로 분류되는 곳이 아닌 지역의 구축 아파트를, 실거주 목적으로 구매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자 했다. 사실상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한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일괄 규제가 ‘대출 난민’을 양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런 광경이 낯설지가 않다. 불과 3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2021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광풍이 불었던 당시 무섭게 불어나는 가계빚에 대부분 은행이 연말 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지금과 다른 점은 금융당국이 전면에 나서 ‘가계대출 총량제’를 시행해 대출 문을 직접 닫았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총량규제 조치 부활했다가 실수요자 비난에 사실상 폐지
당국 가계빚 해결 의지 알지만 개입방식 일관되고 과격해
금융소비자 피해없도록 근본적인 해결방법 찾아야
대출을 받지 못한 실수요자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윤석열 정부 들어 전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을 손보면서 총량 규제 조치는 사실상 폐지됐다. 이후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자 총량 규제가 부활되는 것이 아니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취임 간담회에서 “정량적인 기준으로 (가계대출 관리를) 기계적으로 조치하는 게 경험상 적절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에도 금융당국은 은행의 자율적인 관리를 강조하며 대출 총량 규제를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모양새는 총량 규제가 사실상 부활했다고 봐도 될 듯하다. 또 그 배경에 금융당국이 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각고의 노력에 나서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 인식은 구태의연했고, 개입 방식은 거칠었다. 매번 이런 식이라면 과연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매번 규제 고삐가 느슨해지면 공격적으로 대출 전략을 쓰다가 규제 수위가 올라가면 대출 중단이라는 무책임한 대응에 나선다. 신뢰로 먹고 산다는 금융사들이 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대출수요는 여전하다는 데 있다. 아니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올파포·구 둔촌주공)’ 입주를 앞두고 오히려 더 늘어날 기미다. ‘부동산 문제’와 얽힌 가계부채를 대출만 조이면서 해결할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