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해소가 최대 관심…보조금 축소 무게
우리나라 통상 정책을 총괄했던 4명의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더 독해질 관세 압박'을 경고하고, '신속한 협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1일 서울 FKI타워에서 ‘미국 新정부 출범, 한국경제 준비되었는가’ 좌담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좌담회에는 김종훈 제19대 국회의원과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여한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 전임 통상교섭본부장들이 자리했다. 유 교수는 트럼프 1기 행정부 후반기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다.
여 선임연구위원(2021~2022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에서 바라본 미 대선 이후 한미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여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애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Red Wave)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제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어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2기 정부는 무역적자 축소, 미 제조업 부흥, 미ㆍ중 패권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하에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수단으로 사용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마지막 경합 주(州)인 애리조나주에서도 승리하면서 최종적으로 총 31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이는 지금까지 출마했던 세 번의 대선 중 가장 많은 선거인단 규모다.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이번 대선은 트럼프 당선인의 ‘완승’으로 끝나게 됐다.
여 선임연구위원은 “2017년 트럼프 1기에 내놓았던 법인세 감세, 일자리 법 등 감세 정책이 일몰(2025년) 전에 연장될 것”이라며 “대신 감세에 따른 4조6000억 달러 규모 재정적자를 관세를 높여 충당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60%의 고율 관세 정책 시행을 예고한 만큼 미ㆍ중 무역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2020년 1월 미ㆍ중 1단계 무역 합의에서 중국은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 2000억 달러를 추가 구매키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 합의에 따라 미국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이다.
동맹국인 우리나라 역시 10~20%의 보편관세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면제국 지위를 받으려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유 교수(2019~2021년)는 “미국은 동맹이든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든 철저히 경제적인 수치로 판단한다”며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 미국은 추후 문제가 되더라도 일단 보편관세 조치를 한 후에 (다른 나라와) 협상 과정에서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제기할 수 있는 사항,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할 방안, 우리가 원하는 것을 포함한 협상안을 철저히 준비해서 협상 기회가 열렸을 때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 전 의원(2007~2011년)은 “미국은 한국 등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보편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 관계 전반과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으로서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은 작다고 보면서도,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입맛에 맞게 독소 조항을 추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 연구원장(2011~2013년)은 “IRA 관련, 혜택을 받는 공화당 지역이 많으므로 보조금 삭감 등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반도체법 역시 큰 변화는 없겠으나 보조금 지원 축소 가능성은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요구사항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판세를 읽으면서 통상 외교를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