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된 반도체 관련 법안 ‘불투명’
국제 정세‧반도체 경쟁 치열한데
“정치적 상황에 민생 법은 늘 뒤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불성립되면서 국내 정치의 불안정한 상황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산업계, 특히 반도체 관련 업계는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도와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도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7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했으나, 국민의힘이 투표에 나서지 않으면서 정족수 부족으로 불성립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위태로운 우리나라 산업계, 특히 반도체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탄핵안 투표 불성립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를 유지한다. 그러나 야당이 회기를 이어가며 계속 탄핵안을 상정하고, 여야의 갈등은 깊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치권의 불안한 상황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 대학교의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 지속됨에 따라 반도체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외국 기업의 투자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라며 “인공지능(AI) 시대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며 우리나라 기업들은 투자를 이어 가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 상황 때문에)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올해 인공지능(AI) 시장 개화와 함께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그 주역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AI 시장의 ‘큰 손’으로 불리는 엔비디아에 HBM을 거의 독점 공급하고 있다. D램 시장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추격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선전하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D램과 HBM으로 반도체 시장에서 고점을 달리고 있는데 잠시 주춤할 수도 있다”라며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과 중국의 범용 메모리 제조 기업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을 빠르게 쫓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도 안심할 수 없다. 현재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대만 TSMC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인데, 국내 정치가 흔들리며 제대로 된 주문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도 처리가 요원하다. 국회에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 ‘반도체특별법’이 계류돼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패권경쟁이 심화하며 위기감을 느낀 여당이 당론 발의한 것인데, 야당에서도 세부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는 큰 이견이 없어서 한때 관련 업계에서는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탄핵안 투표 불성립에 따라 당분간 이어질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이 법안은 당분간 논의 대상에서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탄핵 정국으로 빠져들고, 탄핵안과 특검법 등이 우선순위에 오를 전망이다.
반도체특별법 뿐 아니라 다른 법안도 마찬가지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과 정성호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법률안도 당분간 논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이 개정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보여왔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지원할 법안으로 주목받아 왔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시설 투자는 1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적자를 거둔 기업은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투자의 미공제금액을 환급세액 개념으로 보고, 환급받거나 제삼자에게 양도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수도권 과밀 억제 지역에서 시설을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조세 감면이 배제된다. AI 관련 시설 투자가 수도권 지역에 주로 이뤄지는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국가전략기술에 AI를 추가하고, AI 관련 투자를 조세 감면 배제에서 제외해 AI 관련 시설투자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을 포함한다.